국립해양생물자원관 씨큐리움의 전시·교육을 통해 얻는 과학적 영감[기고/백진욱]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0월 4일 13시 57분


백진욱 이학 박사
백진욱 이학 박사
지난 5월, 필자는 국립해양생물자원관의 교육프로그램인 ‘바다 이음’을 통해 한 고등학교에서 강연을 했다. 당시 연구 윤리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 우리나라 과학계의 가장 아픈 사건인 ‘2005년 사이언스 줄기세포 논문 조작’ 사건을 주제로 토론을 준비했다. 하지만 당시 그곳에 모인 고등학생들은 이 사건에 대해 들어본 적도 없다고 했다. 학생들이 대부분 2000년대 중반 생이라는 점을 감안해도 한국 과학계 최악의 사건을 들어보지도 못했다는 것은 적잖은 충격이었다. 시간이 흐르고 충격이 가라앉으면서 필자는 더이상 이런 단편적인 사건들을 가르치는 방식의 한계를 고민하게 됐다. 사건을 단순히 알려주는 것으로는 학생들이 앞으로 마주칠 다양하고 복잡한 문제들을 스스로 해결하는 데 크게 도움이 안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충청남도 서천군에 있는 국립해양생물자원관 씨큐리움은 사례 중심의 교육의 한계를 극복하고 교육생들이 과학적 영감을 고취할 수 있는 공간이다. 시큐리움은 SEA(바다)+Question(질문)+Rium(공간)의 합성어로 바다에 대한 호기심을 가지고 질문을 던지며 해답을 찾아가는 공간이란 의미를 담고 있다.

씨큐리움에는 7000여점 이상의 해양생물 표본이 전시돼 있다. 지난 2015년 5월 운영을 시작한 이래 누적 관람객 170만여 명, 교육생 6만여 명이 다녀갔다. 해양생물 연구 결과인 생물표본을 전시한 상설전시와 다양한 특별전과 기획전, 문화행사가 열리고 이들과 연계한 교육프로그램도 매년 20여 개씩 운영된다.

● 해양생물의 존재가 주는 놀라움과 아름다움에 집중할 수 있는 전시
개관 8년 차를 맞는 씨큐리움은 지난달 11일부터 약 3개월 간 LED 설치, 전시품의 보수, 교육 프로그램 개발 등 미디어아트 상영 및 새로운 가치를 내걸고 휴관 중이다. 이 기간 동안, 씨큐리움의 전 직원은 우리나라의 해양생물 연구‧전시‧교육을 대표하는 기관으로서 전시와 교육의 나아갈 방향에 대해 고민하며,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먼저, 씨큐리움은 전시의 방향을 ‘해양생물 다양성에 대한 설명’에서 ‘해양생물 존재에 대한 감상과 이해’로 변화시키려 하고 있다.

해양생물은 다양한 물속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긴 시간 동안 몸의 형태를 효율적으로 진화시켜 왔다. 일부 해양생물의 생김새는 보기에 기괴하고 이상하기도 하다. 동시에 해양생물의 다양한 형태는 인간의 상상력을 자극하기에는 충분하다.

해양생물 전시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영감은 180톤 몸무게의 대왕고래 몸매의 아름다움, 딱딱한 등딱지를 가지고 넓은 바다를 여행하는 바다거북의 낭만, 다른 생물들에게 집을 제공하며 아낌없이 주는 산호의 마음 등, 그야말로 무궁무진한 해양생물들 존재 자체의 아름다움이다. 위대한 물리학자인 리처드 파인만은 ‘무지개의 기원을 설명한 데카르트의 수학적 분석에서 영감의 원천은 무지개가 아름답다는 생각’이라고 했다.

● 과학자와 교류가 가능한 허브 공간 마련과 비정기 프로그램 개발
두 번째는 도제식 교육 프로그램 개발이다. 이제 과학적인 지식은 간단한 검색으로 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한 명의 과학적 사고가 가능한 시민을 키우기 위해서는 교육 이전에, 사물을 자신만의 상상력으로 바라보고 이를 체계화하고 가설을 세우는 방법, 상상한 것을 확인하기 위한 논리체계를 수립하는 방법에 대해 여러 사람과 대화해 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런 것들은 연구원들과의 개인적인 교류와 끊임없는 문답으로 키워 갈 수 있다. 새로워지는 씨큐리움에서는 연구자들과 시민들이 편하게 교류할 수 있도록 허브 공간을 마련하고, 비정기 프로그램을 개발해, 누구나 연구원과 활발히 교류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 시민 과학 프로그램 개발
마지막으로 과학적 사고의 보편화 및 생활화이다. 폭넓은 인간의 활동으로 야기된 환경오염과 생물다양성의 감소는 일부 전문가들 노력과 행정가들의 예산 투입으로만 해결할 수 없다. 이에 모든 사람들이 일상 생활에서도 과학적 사고를 하는 방법을 알아야 하며, 사례 중심의 암기식 교육보다는 개개인의 행동들이 일으킬 수 있는 일들에 대해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해온 교육활동 뿐 아니라, 시민 과학 프로그램을 통해 연령에 상관없이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는 프로그램의 개발이 시급하다.

COVID-19가 불러온 뉴노멀 시대는 인류 역사상 ‘최초’, ‘최고치 경신’이라는 말을 자주 쓰고 있다. 해양생물 연구를 20년 넘게 해오고 있지만, 너무도 빨리 변화하는 환경과 기술 때문에 5년 안에 해양생물과 관련된 어떠한 문제들이 생길지 예측하기가 쉽지 않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내 유일의 해양생물 전문 박물관인 씨큐리움은 해양생물이 주는 영감을 통해 환경문제의 해결책을 모색하고, 해양생물과 인간이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우리나라 시민들이 스스로 찾아갈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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