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호령하는 프로게이머는 뇌부터 다르다[조영준의 게임 인더스트리]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8월 10일 14시 2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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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를 잘하는 것보다 게임을 잘하는 게 훨씬 더 어려워요. 특히나 게임 하면서 저를 만난다는 건 정말 어려운 겁니다. 예를 들어, 강남구 전체에서 게임으로 1등을 해야 저를 만날까 말까 해요”

과거 ‘스타크래프트’의 명해설자로 이름을 날린 전용준 캐스터가 프로게이머를 희망하는 학생의 학부모에게 한 말입니다. 유명 프로게이머가 되기 위해서는 엄청난 경쟁을 이겨내야 한다는 의미인데요. 강의를 들은 학부모는 ‘내가 안일했다’는 말과 함께 자리를 떠났습니다.

프로게이머가 되는 건 결코 쉽지 않습니다. 전 세계에 게임을 즐기는 사람이 엄청나게 많은데, 그중 최고로 군림한다는 게 쉬울 리가 없지요. 세계를 주름잡을 만큼 엄청난 게임 실력을 가진 게이머들의 뇌는 실제로 어떻게 다를까. 이런 궁금증이 프로게이머의 뇌를 분석하기에 이릅니다.

대표적인 연구가 바로 다큐멘터리 전문 채널 ‘내셔널 지오그래픽’이 한국 프로게이머를 다룬 특집 프로그램입니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이 비교한 일반인과 프로게이머(서지훈 선수)의 뇌 / 출처: 내셔널 지오그래픽
내셔널 지오그래픽이 비교한 일반인과 프로게이머(서지훈 선수)의 뇌 / 출처: 내셔널 지오그래픽
내셔널 지오그래픽은 자사의 TV 채널을 통해 한 시간가량 ‘월드사이버게임스’(WCG)라는 다큐멘터리를 방영했는데요, 지난 2004년에 WCG 세계 게임대회에서 ‘스타크래프트’ 부문 챔피언이 된 프로게이머 서지훈 선수의 뇌 움직임을 일반인과 비교한 것이죠.

비교를 해보니 일단 조작 능력 자체가 차원이 달랐습니다. 일반인이 컴퓨터 키보드와 마우스를 조작하는 횟수가 1분에 100회 정도인데, 서지훈 선수는 이보다 3.7배 많은 370회를 조작했습니다.

또 두 사람이 게임할 때 뇌의 움직임을 컴퓨터 단층 촬영(CT)으로 비교해 보니, 일반인은 시각을 통제하는 뇌 부분만 활성화됐지만, 서 선수는 전두엽과 대뇌변연계가 활발하게 움직이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전두엽은 추리와 의사결정을 담당하고, 대뇌변연계는 본능과 기억력을 통제합니다.

이에 대해 내셔널 지오그래픽 측은 “정말 놀라운 결과”라며, “일반인이 시각을 통해 의사 결정하는 것과 달리, 서 선수는 타이피스트가 자판의 문자 배열을 암기해 본능적으로 문서를 작성하듯 반사신경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게다가 내셔널 지오그래픽은 “한국 프로게이머들은 유전적으로 탁월한 능력을 갖고 태어났다”고 결론짓기도 했습니다.

프로게이머에 대한 또 다른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지난 2018년에는 호주 맥쿼리 대학교와 중국 전자 과학 기술 대학의 공동 연구팀이, ‘리그 오브 레전드’와 ‘DOTA 2’의 여러 대회에서 우승한 경험이 있는 고수 게이머 27명의 뇌를 fMRI로 검사하는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프로게이머와 일반인의 뇌 차이 / 출처: Scientific Reports에 게재된 연구서
프로게이머와 일반인의 뇌 차이 / 출처: Scientific Reports에 게재된 연구서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프로게이머의 뇌를 평소 게임을 안 하는 일반인의 뇌와 비교한 결과, 섬 피질에 있는 특정 소구역의 결합이 많았고, 게다가 회백질의 두께, 면적, 부피가 큰 것으로 밝혀졌다고 합니다. ‘섬 피질’이라는 것은 인간과 대형 유인원에서 볼 수 있는 언어 처리, 공감, 배려 등의 고급 인지 기능에 관련이 있는 영역입니다.

이를 통해 연구진은 게임을 반복적으로 플레이하면 뇌 회백질의 양이 증가하고, 특정 영역의 네트워크 형성이 촉진된다고 결론을 내리며 이 연구를 ‘사이언티픽 리포트(Scientific Reports)’에 게재했습니다.

스타크래프트 1과 2 뇌의 차이를 연구한 한덕현 중앙대 교수 / 출처: 중앙대 홈페이지
스타크래프트 1과 2 뇌의 차이를 연구한 한덕현 중앙대 교수 / 출처: 중앙대 홈페이지
‘스타크래프트 1(이하 스타 1)’과 ‘스타크래프트 2(이하 스타 2)’ 선수들의 차이점을 짚어낸 교수도 있습니다. 한덕현 중앙대 교수는 “‘스타 2’ 프로게이머는 ‘스타 1’ 프로게이머보다 전두엽보다 균형 감각을 담당하는 소뇌 쪽이 활성화된다.”라고 결론 내렸습니다.

‘스타 2’가 3D 게임이기 때문에 입체감을 통해 균형 감각을 좀 더 느끼기 때문이라는 것으로, 한덕현 교수는 “게임의 재미 요소는 반복과 변형이며, 이런 반복과 변형을 통한 자극은 뇌에 중요한 요소가 된다. 적절한 자극은 오히려 뇌에 도움을 준다”며 ‘게임의 전두엽 파괴설’에 대해 반대 의견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프로게이머의 뇌를 연구한 과학자들은 ‘게임을 오랫동안 해온 게이머들의 뇌 기능이 향상된다’는 결론을 내놨는데요, 이러한 연구가 ‘게임은 질병’이라고 주장하는 여러 정신과 교수들과 정면으로 대치되는 결과여서 흥미롭습니다.

지난 2020년에 세계보건기구(WHO)는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제72차 총회 B위원회에서, 게임중독을 ‘게임사용장애(Gaming disorder)’로 분류한 제11차 국제질병표준분류기준(ICD) 안을 통과시켰는데요. 의견이 분분한 이 기준안이 국내에서 어떻게 적용될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조영준 게임동아 기자 jun@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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