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호 실패는 헬륨탱크 설계오류 탓…2차 발사 연기될듯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2월 29일 15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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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사진공동취재단
고흥=사진공동취재단
올해 10월 21일 첫 발사에서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가 위성 모사체를 궤도에 진입시키는 것에 실패한 것은 3단 엔진에 산화제를 공급하는 탱크에 설계 오류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산화제 탱크 내부에 장착된 헬륨탱크의 고정 장치가 누리호의 비행 환경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설계되면서 비행 중 떨어져 나간 것으로 드러났다. 이 과정에서 헬륨탱크가 산화제 탱크 내부를 돌아다니며 충격을 줬고 결국 연료를 태우는 역할을 하는 산화제가 누설되며 3단 엔진이 일찍 꺼진 것이다. 이 부분에 보강이 필요해지면서 내년 5월로 예정됐던 누리호 2차 시험발사는 하반기 이후로 연기될 것으로 보인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은 29일 누리호 발사조사위원회가 진행한 ‘누리호 1차 발사에서 위성모사체가 궤도에 투입되지 못한 원인을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누리호는 1.5t의 실용위성을 고도 600~800km의 지구 저궤도에 투입하는 것을 목표로 개발된 3단형 우주발사체다. 독자 기술로 확보한 75t급 액체엔진 4기를 묶어 300t의 추력을 내는 1단 엔진과 75t급 액체엔진 1기로 구성된 2단 엔진, 7t급 액체에진 1기로 이뤄진 3단 엔진으로 구성된다.

10월 첫 발사에서 누리호는 1단과 2단 엔진 연소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3단 엔진의 연소 시간이 애초 계획된 521초보다 46초 짧은 475초에 종료됐다. 초기 분석에서는 산화제 탱크 압력이 떨어져 엔진 출력이 감소해 연소시간이 목표 시간보다 모자랐던 것으로 분석됐다. 과기정통부는 발사 직후 항우연 연구진과 외부 전문가가 참여한 누리호 조사위를 구성해 5회에 걸쳐 조사위를 열고 원인을 분석했다.

3단 엔진 조기종료는 3단 산화제탱크 내부에 장착된 헬륨탱크 고장장치를 설계할 때 비행 중 부력 증가를 미처 고려하지 못해 발생한 것으로 드러났다. 부력은 액체나 기체 속에 담긴 물체가 떠오르는 힘이다. 누리호가 발사 직후 가속을 받으면서 중력이 늘어나면 부력도 늘어나는데 고압 헬륨탱크를 고정하는 장치를 지상 기준으로 설계해 실제 비행 과정에서 견디지 못한 것이다.

헬륨탱크는 산화제 내부 압력을 유지해주는 헬륨을 공급하는 장치로 냉각에 드는 무게를 줄이기 위해 영하 183도의 액체산소 산화제가 담긴 산화제 탱크 내부에 장착됐다. 그러나 부력 때문에 헬륨탱크 고정부가 풀리면서 헬륨탱크가 계속 움직였고 탱크 배관을 변형시켜 헬륨이 누설됐다. 이 여파로 산화제 탱크가 균열돼 산화제도 누설됐다. 3단 엔진으로 들어가는 산화제 양이 줄어들면서 3단 엔진이 조기에 꺼지는 결과가 나타났다.

데이터 분석에서 누리호는 발사 36초 만에 3단 탱크에서 충격이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누리호 원격계측장치가 보낸 2600여 개의 데이터에 따르면 비행 시작 36초 후 비행과정에서 3단 탱크연결 트러스와 위성어댑터에서 예상치 못한 진동이 측정됐다. 헬륨탱크에서는 헬륨이 누설되기 시작했고 산화제 탱크 기체 압력이 오르기 시작했다. 이륙 67.6초 후 산화제탱크 기체 압력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산화제탱크 상부 표면온도가 급격히 떨어졌다. 115.8초에는 헬륨탱크 압력이 줄면서 3단 산화제 탱크 기체 압력이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항우연의 내부 분석 과정에서 산화제 탱크 내부에서 헬륨 탱크가 떠다니며 탱크 내벽에 부딪히며 ‘쿵쿵’거리는 소리도 포착된 것으로 나타났다.

최환일 조사위원장(항우연 부원장)은 “중력에 따른 부력은 고려했지만 실제 비행 중 최대 4.3G(G는 표준 중력 가속도 단위, 1G는 지상에서 중력) 가속도가 발생했다”며 “지상 상황인 1G 부력만 고려했고 최대 가속도인 4.3G 부력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실수가 있었다”고 말했다. 고정환 항우연 본부장은 “지상에서만 실험을 진행하다 보니 비행 상황에 대한 고려가 조금 미흡한 부분이 있었다”고 말했다.

과기정통부와 항우연은 이번에 밝혀진 원인을 토대로 누리호 기술 보완을 위한 세부 조치 방안을 마련하고 추진일정을 확정하기로 했다. 헬륨탱크 고정부와 산화제 탱크 구조를 강화하는 것 중심으로 이뤄질 전망이다. 헬륨탱크 고정 지지대는 405kg을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됐는데 이번에는 부력으로 482kg가 누르는 힘이 발생했다는 설명이다. 고 본부장은 “탱크 내부 작업이 필요해 언제 마무리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며 “빠른 시간 내로 설계를 변경하고 예상 일정을 발표하겠다”고 말했다.

내년 5월로 예정됐던 2차 발사는 미뤄져 내년 하반기 중에나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권현준 과기정통부 거대공공정책관은 “앞으로 사업추진위원회와 국가우주실무위원회를 통해 기술적 조치에 따른 향후 추진일정을 확정해 나갈 예정”이며 “5월은 어려울 것 같고 하반기 중에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항우연에 따르면 현재 3단 로켓 2호기가 내년 5월 발사를 앞두고 조립된 상태로 대기 상태에 있고 3호기는 현재 조립 중에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항우연 관계자는 “2호기는 완제품인 상황이라 문제를 고치려면 다시 뜯어내야 하기 때문에 현재 상태로는 당장은 사용이 불가능하고 조립 중에 있는 3호기를 빠르게 고쳐서 사용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최 위원장은 “설계시 비행 가속 상황에서 부력 증가에 대해 충분히 고려치 못해 국민 성원에 부응하지 못한 점을 안타깝고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향후 철저한 보완을 통해 2차 발사를 준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서동준 동아사이언스 기자 bios@donga.com
조승한 동아사이언스 기자 shinjs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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