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마당]단순 약품 슈퍼마켓 판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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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4월 14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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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통제 소화제 등 단순 약품의 약국 외 판매 허용 논란이 일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국민 생활에 도움이 되고 관련 분야 시장을 확대할 수 있다면서 제도 시행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보건복지가족부는 국민 건강과 직결되는 의약품은 공산품과 같이 취급할 수 없다고 반대한다. 전문성이 필수적으로 요구되지 않는 약품에 대해 소비자 편의를 존중하자는 주장과, 의약품은 편의성에 입각해 접근하면 안전성과 사용의 질을 담보하기 힘들다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

 약사 도움 필요없는 약은 허용을

경쟁으로 유지하는 시장경제에서 독점은 철폐의 대상이다. 보호해야 할 독점도 있다. 바로 전문가의 업무 영역이다. 치명적일 수 있는 문제에 대해 얼치기가 초래할 위험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질병 치료와 약물 취급은 어느 나라나 적절한 훈련을 받은 사람에게 독점시킨다. 그러나 여기에는 반드시 지켜야 할 원칙이 있다. 전문성이 굳이 필요 없는 부분까지 독점시켜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전문성이 요구되는 만큼만 독점이 허용된다는 ‘비례의 원칙’은 규제정책의 핵심이다.
이런 글로벌 기준을 크게 벗어난 것이 바로 우리의 OTC(처방이 필요 없는 일반의약품 중에서도 특별히 안전성과 유효성이 인정된 약품) 약국 독점이다. 철마다 감기를 앓는 나는 내게 잘 맞는 종합감기약 제품을 발견했다. 그러나 약국에 갈 때마다 약사는 ‘이게 더 좋습니다’ 하며 다른 제품을 내민다. 약사가 권한 약이 더 만족스러웠던 적은 한 번도 없다.
많은 제품을 모두 갖출 수 없고 구비해 놓은 제품을 팔아야 하는 약사의 처지도 이해한다. 그러나 내가 약사의 도움이 필요 없다는데, 약사가 실제로 기여하지도 않는데 감기약마저 약사가 집어주는 대로만 먹어야 하는 제도는 화나는 일이다. 더구나 약국이 문 닫은 후에는 약을 구할 수조차 없으며 무엇이 어느 약국에 있는지, 얼마인지는 약국에 가야만 알 수 있으니 가격 경쟁도 불가능하다.
일본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모두 사람들이 많이 찾는 몇 가지 약은 소매점 판매를 허용한다. 약사의 전문성이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약품이 아니니 소비자의 편의를 존중해야 하고 경쟁을 막아서는 안 된다는 논리에서다. 그런데 심지어 우리는 편의점과 유사하게 진열대에 올려진 약을 곧장 계산대로 가져갈 수 있는 약국까지 출현했으니 약국 독점의 목적마저도 약화 사고 방지가 아니라 약사 수입 유지라는 점이 명확하다.
보건복지가족부 장관은 1일 우리나라는 약국이 많아 국민이 불편하지 않다고 말했다. 내가 불편한지 아닌지는 복지부가 결정할 일이 아니다. 약국이 문 닫은 주말이나 밤에 해열제나 진통제를 찾아 헤매본 국민이 할 말이다. OTC 약국독점폐지가 과연 약사의 생존권을 위협하는지도 짚어볼 만하다. 약사 수입은 처방약 관련 수입과 일반의약품 마진이다. 2008년 공단은 처방약값으로 7조2000억 원, 약사에게 2조4000억 원을 지불했다. 약값을 제하고도 영업 중인 약사 1인당 평균 7500만 원씩을 지급한 셈이다. 반면 일반의약품 마진은 상당한 규모라고 추측되나 정확한 규모는 알려져 있지 않다. 현재 논의되는 방안은 그중에서도 감기약 소화제 진통제에 대해서만 마진을 편의점과 나누라는 것이므로 약사 생존권과 직접 결부시키기는 어렵다.
모든 개혁은 일부의 기득권을 국민 전체로 되돌리는 조치이므로 이해집단의 저항이 따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약사와 그들에게 의존하는 국회의원의 반대는 공감은 안 돼도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국민의 건강과 복지를 책임져야 하는 복지부의 반대는 불가해하다. 아무리 애써도 도무지 이해할 길이 없다.
윤희숙 KDI 연구위원

 안전성 확보 어렵고 오남용 우려

석면이 함유된 탤크를 첨가제로 사용한 의약품을 정부는 위해 가능성이 미약하다고 판단하면서도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즉각적 사용 중지 명령을 내렸다. 국민 건강과 직결된 의약품은 안전이 절대적 기준임을 보여 주는 단적인 사례이다. 최근 혈액질환과 의식장애 등 부작용 논란으로 많은 진통제(이소프로필 안티피린 함유)를 15세 미만에게 투여하지 못하도록 했다. 미국에서는 감기약을 과다 복용한 2세 미만 영유아가 다수 사망하여 국내에서도 지난해부터 2세 미만에 대한 시럽제 감기약 투여를 금지했다. 일부 소화제(메토클로프라미드 성분)는 장기 사용 시 만발성 운동장애 위험이 있어 최근 의약사에게 안전성 서한이 배포됐다.
슈퍼마켓 판매의 가장 큰 문제점은 의약품의 안전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의약품은 어떻게 관리하고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질병을 치료할 수도 있고 독이 될 수도 있다. 안전성이 입증된 일반약이라도 환자의 건강상태나 복용방법에 따라 부작용의 발생 가능성이 항상 있음을 그동안 일련의 많은 약화 사고에서 봤다. 의약품은 공산품처럼 취급해서는 안 된다.
둘째로 일반의약품을 슈퍼마켓에서 판매하면 부작용이나 위해 제품이 발생해도 신속한 보고 및 회수가 어렵다. 발암성이 확인되어 회수명령이 내려진 살충제를 약국에서는 모두 회수했으나 1년이 지난 시점까지 슈퍼마켓에서 판매해 충격을 준 바 있다. 지난해 멜라민 사태나 이번 석면 함유 탤크 원료를 사용한 의약품은 빠른 시간에 즉각적 회수가 약국에서만 가능함을 보여준 사례이다. 반면 2005년부터 3년간 국내 유해식품의 수거율은 평균 14%에 불과했다.
또 슈퍼마켓 판매 시 올바른 의약품 사용 및 관리나 오남용 방지에 대한 전문성이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부실한 의약품 관리는 의약품의 유효기간을 단축시키고 인체에 유해한 이물질이 발생하여 독성을 유도할 수 있다. 의사 진료가 필요한 환자가 의약품을 슈퍼마켓에서 구입해 장기간 복용할 경우 심각한 질환을 조기 진단하고 치료할 수 있는 시기를 놓친다. 전문가에 의해 관리되지 않는 의약품은 부작용과 오남용을 초래할 수 있고 약화 사고 발생 시 책임소재가 없어 보상이 어렵다.
일반의약품의 슈퍼마켓 판매를 통해 매출을 확대하고 국민 불편을 해소하자는 주장이 있다. 의약품은 사용량을 늘려 경제 활성화에 기여토록 하는 수단이 돼서는 안 된다. 의약품이 유통업체에 종속되어 의약품에 대한 국민의 선택 폭을 제한하고 의약품산업에 혼란이 초래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의약품을 편의성에 입각해 규제 완화로 접근하려는 잘못된 판단은 안전성과 사용의 질을 담보할 수 없다.
따라서 전문지식을 갖춘 약사가 있는 약국을 통해 의약품을 판매하고 당번약국의 의무를 강화하여 편의성 및 접근성을 높이고 철저한 복약지도 활성화로 국민의 안전성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 약사회는 약사가 일반약 복약지도에 만전을 기하도록 교육과 홍보에 노력해야 한다. 전문가에 의한 의약품의 안전한 사용과 지도는 국민건강을 최우선으로 하는 보건정책의 근간이자 원칙이다.
이범진 강원대 약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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