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고싶은 남자들]정신과 전문의가 본 ‘위기의 중년’

  • 입력 2005년 9월 3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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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고 싶은 남자들’ 시리즈를 읽으면서 한국의 남자들이 정말 힘들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정말 한국의 남자들은 그 어느 때보다 어려운 시절을 살고 있다. 총체적 난국이라고 표현해야 할까? 요즘 남자들은 맘 놓고 쉴 곳, 맘 놓고 위로받을 곳이 없다. 회사는 물론이고 가정에서도 자리가 없다. 어디에서도 우군을 찾기 힘들다.

남자들이 원해서 지금의 처지가 된 것은 아니다. 그동안 대다수의 남자는 묵묵히 가정을 지키고 열심히 일만 했다. 그래서 지금 자신의 처지가 억울하다. “왜 나를 이렇게 홀대하는가?”라고 한탄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바로 이 ‘단순함’이 부메랑이 돼 남자에게 돌아온 것은 아닐까.

필자는 스트레스 클리닉을 운영하는데 상당수 환자가 중년 남성이다. 회사에서 치이고 집에서 치여 소위 ‘화병’을 얻은 사람도 많다. 면담을 해 보면 대부분 회사 생활을 성실하게 했고 가정에도 충실하려는 사람들이 많았다. 다만 일이 생각대로 안 풀려서 병을 얻게 되는 것이었다.

그런 환자 중 상당수는 변화에 대한 적응력이 크게 떨어져 있는 상태였다. 사회의 변화에 둔감해지고 그에 따라 더욱 과거에 집착하는 경향이 강했다. “우리 때는 안 그랬는데 요즘에는…” 식의 한탄이 늘어난다. 그러나 그 같은 한탄은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다시 남자들이 ‘대접’을 받으려면 스스로 바뀌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여기서 ‘대접’이란 과거의 권위주의적 의미를 말하는 게 아니다. 사회의 다른 구성원들과 조화롭게 어울리는 것을 뜻한다.

우선 ‘모름지기 남자란…’으로 시작하는 낡은 문구부터 버려야 한다. 그 문구가 남자 스스로에게 족쇄를 채우기 때문이다. ‘남자는 평생 세 번만 울어야 한다’는 따위의 말은 다 잊어버리자.

남자들도 아줌마들의 수다를 배워야 한다. 정신의학적으로 봐도 수다와 유머는 가장 좋은 스트레스 해결책이다. 수다는 감정을 가장 잘 표현하는 도구이기도 하다. 남자들이여, 이제 감정을 충분히 표현하자. 울고 싶으면 실컷 울어도 된다.

힘들다고 말할 줄도 알아야 한다. 가장(家長)은 늘 꼿꼿해야 한다는 편견부터 버려야 한다. 당신의 아내와 아이들도 때로는 도움을 요청하는 남편과 아빠를 바라고 있다.

많은 여성들이 “나만의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남자도 마찬가지다. 혼자 생각에 잠길 수 있는 공간을 요구하자. 요컨대 분명하게 의사 표현을 해야 한다는 얘기다.

가족들의 따뜻한 애정과 배려도 필요하다. 남자들의 한숨에 “자업자득”이라고 차갑게 쏘아붙이고 싶은 아내, 자식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말은 그렇게 내뱉을지라도 차가운 눈빛, 닫아 버린 마음의 문 앞에서 돌아서는 자기 아버지의, 자기 남편의 휴지처럼 구겨진 어깨를 보며 쓰라림을 느끼지 않을 아내와 자식은 많지 않을 것이다.

설령 가부장적인 모습으로 군림했던 과거를 가진 가장일지라도, 가족을 위해 자신의 젊음을 바쳤던 그들의 헌신마저 없었던 일이 되는 것은 아니다. 사소한 일상에서 가족의 작은 배려, 친근한 말 한마디에도 천군만마를 얻은 듯 마음속으로 기뻐하며 소리 없이 웃는 사람들, 그게 남자다.

남성이 ‘대장’으로 군림하던 시절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미래의 리더는 남녀의 구분이 없다. 조화로운 남성상을 새로 만들어가는 데도 사회 전체가 깊은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다.

우종민 인제대 서울백병원 신경정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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