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과학기술 논문 아직은 ‘속’더 채워야”

  • 입력 2002년 12월 3일 18시 05분



대학마다 교수들간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국제 학술지에 발표하는 과학기술 논문의 수는 급증하고 있지만 논문의 질은 세계 중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서울대가 국제 학술지에 발표한 논문들도 논문의 영향력을 말해 주는 ‘피인용률’이 세계 평균치에 미달하고 있다.

지난 10년간 대학사회의 화두는 단연 과학인용색인(SCI·Science Citation Index)이었다. SCI는 3900종의 우수 학술지 목록으로, 미국의 민간기관인 ISI는 피인용률과 영향력이 상위 15%에 드는 학술지 목록을 매년 발표하고 있다.

대학에서 교수를 채용하거나 승진시킬 때 또는 과학재단이나 학술진흥재단에 연구비를 신청할 때 늘 등장하는 평가 기준이 ‘SCI 학술지에 논문을 몇 편 발표했느냐’이다.

교육부는 두뇌한국(BK)21사업 추진 이후 SCI 논문 수가 늘었다고 선전하고 있고, 과학기술부도 SCI 논문 발표수가 곧 한국 과학기술의 수준인양 발표하고 있다. 실제로 교육부는 얼마 전 SCI 논문 수를 분석해 지난해 국내 대학의 SCI 논문 증가율이 세계 1위였고, 발표논문수가 세계 14위로 뛰어올랐다고 밝혔다.

그러나 논문의 영향력과 질을 나타내는 척도인 ‘피인용률’은 매우 뒤지고 있다. ISI에 따르면 지난 10년 동안 발표된 한국 SCI 논문의 한편당 피인용률은 11개 자연과학 분야에서 재료과학과 화학이 세계 35위와 48위인 것을 제외하고는 물리, 생물, 공학 등 나머지 9개 분야가 150여개국 가운데 50위권 바깥이었다.

10년 동안 한국의 SCI 논문 9만3762편의 편당 평균 피인용률은 3.45회로, 미국(11.9회) 일본(6.9회)의 3분의 1 내지 2분의 1 수준이었다. 논문은 획기적인 내용을 담고 있을수록 다른 학자들에 의해 자주 인용되므로, 피인용률이 높다는 것은 그만큼 논문의 파급 효과가 크다는 것을 뜻한다.

한편 ISI사가 과학기술한림원에서 최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10년 동안 서울대 SCI 논문의 편당 평균 피인용률은 8개 자연과학 분야 모두 세계 평균치에 미달했다. 물리학과 재료과학 분야만 세계 평균치에 겨우 근접했지, 생물학 및 생화학 분야는 세계 평균치의 39%에 불과했다. 서울대는 전체 SCI 논문 수가 1997년 전세계 대학과 연구소 중 126위에서 지난해에는 40위로 올라섰지만 논문의 영향력은 세계의 평균치를 밑돌고 있는 것이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도 최근 5년 동안 전기전자공학 분야의 SCI 논문 수가 MIT, 버클리대, 스탠퍼드대를 능가하는 등 논문 편수로는 대부분의 학과가 ‘세계 톱 10’에 들어갔다. 하지만 KAIST가 이들 대학보다 수준 높다고 믿는 과기원 교수는 거의 없다.

한국과학기술원 홍창선 원장은 더 이상 논문의 양을 강조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보고 내년 3월부터 논문의 질로 교수를 평가하기로 최근 규정을 바꿔 대학 사회에 조용한 파문을 일으켰다. 과학기술원 이해웅 교무처장은 “지금까지는 발표 논문 편수를 중시했지만, 앞으로는 논문을 몇 편 발표했든 상관없이 교수 신규 임용과 부교수 승진 때는 대표적인 논문 2편, 교수 승진 때에는 4편만 제출해 이들 논문의 인용횟수와 인지도로 교수를 평가하기로 방식을 바꾸었다”고 말했다.

서울대 공대 한민구 학장은 “서울대 공대도 국제학술지 발표논문이 몇 편 이상 돼야 교수를 승진시켜 왔으나, 과기원이나 서울대 같은 연구중심대학은 논문 편수보다 논문의 영향력을 더 중시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그러나 실제 산업 현장에 기술이 적용되는 공대의 경우 단순히 논문으로만 교수를 평가하는 것은 곤란하며 산학협동, 특허, 기술의 응용성, 강의 등으로 평가기준을 다양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국의 분야별 SCI 논문수와 피인용률의 국제 순위 (1992년~2002년 8월)
주제물리학임상의학생물학생화학화학약학독성학재료과학동식물학공학컴퓨터농학수학
논문수14위27위21위13위15위10위33위12위12위37위17위
피인용률55위81위61위48위61위35위56위58위55위50위53위

신동호 동아사이언스기자 dong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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