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쪼이면 변신" 방사선은 요술광선

  • 입력 2001년 10월 4일 19시 00분



A기업의 S부장은 최근 절친한 친구들과 새벽 골프에 나섰다.

그는 ‘장타 챔피언’을 겨뤘던 지난번 모임에서 라이벌인 K교수에게 불과 5m 차이로 고배를 들었다. 올해 들어 번번이 몇 m 차이로 깨지기 일쑤였다. 그러나 그 날은 그의 얼굴에 자신감이 가득했다. 비거리를 5∼10% 늘려주는 ‘방사선 골프공’을 준비했기 때문이다.

암 치료나 식품처리 등에 머물던 방사선이 최근 골프, 지뢰 탐지, 인공관절, 범죄 수사 등 폭넓은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방사선은 원자핵이 분열하거나 융합할 때 나오는 높은 에너지의 빛.

골프공에 방사선을 쬔 ‘방사선 골프공’은 미국 감마스포츠 사에서 이미 개발해 판매하고 있으며, 국내서도 그린피아기술이 시제품 형태로 개발을 끝냈다.

골프공에 들어 있는 수많은 탄소들은 방사선을 받으면 서로 다리가 이어지듯 연결돼 탄성률이 크게 올라간다. 딤플(골프공 표면의 작은 홈)이 받는 공기저항도 줄어든다. 덕분에 방사선 공은 일반 공보다 5∼10% 더 멀리 날아간다. 그러나 일반 공에 익숙한 골퍼들이 방사선 공을 무심코 치면 몸에 익숙하지 않아 오히려 엉뚱한 곳으로 가기도 한다.

한국원자력연구소 조용섭 박사팀은 방사선을 이용해 지뢰나 폭탄을 찾는 방법을 개발하고 있다. 플라스틱 폭탄, 발목 지뢰 등 금속탐지기로 찾기 어려운 폭탄을 방사선으로 찾겠다는 것이다.

방사선 가운데 감마선은 질소 원자핵과 만나 특이한 반응을 보인다. 폭약은 대부분 질소화합물이기 때문에 이 성질을 이용해 폭탄을 찾아낼 수 있다고 연구팀은 설명한다.

조용섭 박사는 “내년 상반기중 공항에서 이용할 수 있는 고정식 폭탄 탐지기를 개발한 뒤 2004년까지 차에 싣고 다니는 ‘이동형 지뢰 탐지기’도 선보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방사선은 범죄수사에도 널리 쓰인다. 80년대 화성연쇄 살인사건에서 범죄 현장에 남은 체모를 통해 범인을 찾아낸 데에는 방사선의 공이 컸다.

머리카락이나 체모에 방사선을 쪼여 분석하면 개인에 따라 원소 성분이 조금씩 다르게 나온다. 체모 등은 이제 DNA 검사법을 주로 쓰지만 페인트, 섬유, 흙알갱이 등은 여전히 방사선을 많이 이용한다.

방사선이 없다면 자동차나 비행기 등을 만들기도 만만치 않다.

자동차 엔진 주위에 있는 전선들은 100℃를 오르내리는 엔진 열기를 견디기 어렵다.

그러나 방사선 처리를 한 전선은 예외다. 140℃에도 끄떡없다. 골프공처럼 탄소들이 수없이 연결되기 때문에 열에 강해진다.

퇴행성 관절염 환자의 몸에 삽입하는 인공관절도 방사선 처리를 하면 수명이 40% 이상 길어진다. 인공관절은 젊은이는 10년, 노인은 15년이면 교체해야 하지만 방사선을 쪼여주면 훨씬 오래 쓸 수 있다.

<김상연동아사이언스기자>dre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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