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즈(AIDS)로부터 간염, 독감에 이르기까지 바이러스가 일으키는 전염병은 수백 종에 이르지만 지금까지 개발된 치료제는 전무한 상태다. 가장 흔한 바이러스병인 감기도 아직 치료약이 없는 실정. 다만 헤르페스바이러스에 의해 입술 주위에 물집이 생길 때 바르는 치료제가 유일한 예외다.
치료제 개발이 어려운 것은 바이러스의 독특한 구조와 증식과정 때문이다. 바이러스는 다른 생물(숙주)의 세포 안에서만 살 수 있는 기생체로, 유전정보를 담은 핵산(DNA 또는 RNA)과 이것을 둘러싼 단백질막, 그리고 세포침투용 단백질 작살이나 효소로만 이루어져 있다. 즉 바이러스는 숙주세포에 침입한 뒤 그곳의 여러 도구를 이용해 자신을 복제하고 증식시킨다. 그래서 인체의 세포에는 해를 주지 않고 바이러스만을 선택적으로 죽이는 치료제를 개발하기가 어렵다. 기존의 항바이러스제는 대부분 바이러스의 증식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을 뿐 잠복해 있는 바이러스를 완전히 없애지는 못한다. 더욱이 에이즈 등 일부 바이러스는 환경에 적응해 돌연변이하는 속도가 빨라 항바이러스제의 효과를 무력화시키고 쉽게 내성을 획득한다.
이 때문에 예방백신의 개발과 보급이 바이러스와 싸우는 최선의 방법으로 인식돼 왔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세기의 천연두처럼 21세기에는 소아마비를 지구상에서 뿌리뽑자는 목표를 세우고 예방백신의 보급에 발벗고 나섰다.
유행성출혈열을 일으키는 한탄바이러스를 발견한 와 서울바이러스를 잇따라 발견하고 그에 대한 예방백신과 진단방법까지 개발한 이호왕 박사(72·대한민국학술원 회장)는 “바이러스의 유전자 구조와 변이 과정을 정확히 알아내고 인체 면역세포의 선택적 방어과정을 규명한다면 21세기에는 바이러스 정복을 앞당길 수 있다”고 내다봤다.
<동아사이언스김훈기기자>wolf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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