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에 주부체험 쓰는 차영회씨]"주부애환 잘 알죠"

  • 입력 2000년 4월 16일 20시 07분


인터넷사이트 사이버주부대학(http://cyberjubu.com)의 ‘남자가 쓰는 주부일기’가 주부들의 인기를 끌고 있다. 차영회씨(41·인천 계양구 작전동)가 주부들과 ‘사는 얘기’를 나누기 위해 글을 올리기 시작한 이 코너엔 하루 100명 이상 주부들이 방문한다.

차씨는 집안일 하랴, 초등학생 3학년인 딸과 1학년짜리 아들 뒷바라지하랴, 직장에 다니는 아내 ‘내조’하랴, 하루종일 종종거리고 다녀도 일한 표시도 안난다는 주부다. 굳이 표현하자면 주부(主夫)라고나 할까.

▼"직장 다닐때가 더 편했죠"▼

“5년째예요. 정말 힘들어요. 돈버는 것이 훨씬 쉬워요. 아내도 직장생활이 살림보다 편하다고 해요.”

그러나 차씨는 다른 주부들에게 비생산적인 가사노동을 개선할 여지가 많다고 말한다. 매일 집안을 쓸고 닦아야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야 하며 휴일엔 베란다치우기 보다 가족산책이 더 소중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는 얘기.

하지만 역시 아이들 문제에서는 갈등하게 된다. 아무리 예뻐도 운동화는 하나면 되고, 스티커 때문에 산 ‘포켓몬스터’빵은 맛이 없어도 다 먹어야 한다는 ‘원칙’ 때문에 아이들로부터 ‘짠돌이’‘구두쇠’란 말을 듣는 것은 이해한다. 그러나 아이들이 “엄마가 직장에 다녀야한다는 것도 알고 아빠가 저희를 잘 돌봐주는 것도 알지만 그래도 엄마가 집에 있었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할 땐 어쩔줄 모르겠단다.

“주부들의 공허함이 크더군요. 사회활동에 관심이 많아요. 그러나 경제활동이 여의치 않다면 독서나 취미활동, 일주일에 한번이라도 봉사활동을 통해 자아성취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무능한 아빠로 보일까 걱정▼

아내와 역할을 맞바꾼 차씨의 고민은 더욱 컸다. 특히 아이들이 능력없는 아빠로 기억할까 걱정됐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아이들 눈높이에서 성경책 다시 쓰기. 오전에 성경을 재구성하고 방과후 딸애에게 읽혀 어려운 낱말이나 표현을 고쳐 써나가고 있다. 출판하고 싶지만 안돼도 상관없다.그 자체가 아이와 함께 하는 작업이고 기쁨이니까.

최근 가계부를 쓰기 시작했지만 예전에 “재미없어 못쓰겠다”고 한 아내의 푸념이 이해가 간다. 주부들이 슈퍼에서 찍어준 가격표 목록을 보면서 산 것은 없는데 합계가 10만원이 넘으니 도둑맞은 느낌이 든다고 하는 것도 공감한다.

“주부로서 공감하는 것, 이외에도 많아요. 아이가 가정환경조사서의 아빠 직업란에 ‘없음’ 엄마 직업란엔 ‘회사원’이라고 자신있게 쓰길래 이 내용을 ‘주부일기’에 올렸더니 한 주부가 다음엔 ‘가사예술가’라고 일러주래요. 그러면서 그래도 남자가 살림한다고 관심 가져주니 얼마나 좋으냐고 하더군요.”

마흔이 되기 전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 때려치운 출판사일. 어쩔 수 없이 주부가 됐고, 언제까지 할 지 모르지만 즐겁고 책임있게 하자고 마음먹는다.

“가정의 소중함을 깨달은 것이 가장 큰 수확이지요. 집이나 직장에서 남자여자 따지지 말고 사람이란 테두리안에서 봐야해요. 진작 알았더라면 직장일 가정일 모두 잘했겠지만….”

<김진경기자>kjk9@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