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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문화

[이새샘 기자의 고양이끼고 드라마]고통이 클수록 돋보이는 ‘영웅다움’

입력 2016-05-31 03:00업데이트 2016-05-3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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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제시카 존스’ ‘데어데블’
제시카 존스(왼쪽 사진)는 범죄 피해자, 데어데블은 시각장애인이다. 둘은 트라우마를 극복하며 진정한 히어로로 거듭난다. 넷플릭스 제공
현대의 신화라 할 수 있는 히어로물을 인간의 영역으로 끌어내려 반전의 묘미를 주는 마블의 실험은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친구를 위해, 혹은 복수를 위해 서로 피터지게 싸우고(‘캡틴 아메리카: 시빌워’), 히어로들의 권리 찾기 투쟁에 나선다(‘엑스맨’ 시리즈).

능력에 걸맞지 않은 인간적인 고뇌와 상처는 요즘 히어로물의 필수 요소다.

넷플릭스에서 제작한 ‘제시카 존스’와 ‘데어데블’은 여기서 한 발짝 더 나간다. 아예 흔히 트라우마라고 부르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그 자체가 드라마의 핵심이다. 앞서 언급한 히어로물과 비교하면 능력은 한참 부족한데, 고뇌의 깊이는 결코 부족하지 않다.

제시카 존스의 제시카(크리스틴 리터)는 뉴욕 헬스키친 지역의 사립탐정이다. 알코올의존증에 가까운 술고래에 타인을 밀어내는 외로운 영혼, 하드보일드 소설 속 탐정 모습 그대로다. 어릴 적 사고 이후 엄청난 근력과 점프력 등 초능력을 지니게 됐지만 마음을 조종하는 초능력자 킬그레이브에게 이용당해 자신의 능력으로 사람들을 해친 과거가 있다. 그의 상태는 성폭행 피해자와 닮아 있다. 신체의 통제권을 완전히 잃은 채 조종당했기에 무력하고 나약했던 자신에 대한 수치심으로 스스로를 학대하고 자기 안으로 숨어드는 것이다.

‘데어데블’의 매슈, 혹은 데어데블(찰리 콕스)은 낮에는 헬스키친의 신참 변호사, 밤에는 히어로로 활약한다. 시각장애인이라는, 히어로로서는 꽤 큰 신체적 약점을 갖고 있지만 대신 청각이나 후각, 촉각 등 시각 외의 모든 감각이 압도적으로 발달해 있다. 하지만 그뿐, 딱히 주먹이 강하거나 힘이 센 것은 아니다. 그는 무력하게 아버지를 잃었던 어린 시절을 곱씹으며 끊임없이 훈련하고 스스로를 단련한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리는 건 두 히어로뿐만이 아니라 도시 전체다. 두 드라마의 배경은 또 다른 마블의 작품 ‘어벤져스’ 1편 이후, 어벤져스와 외계 종족의 싸움으로 뉴욕에 핵무기가 떨어질 뻔했던 이른바 ‘뉴욕 사건’ 직후다. 마치 9·11테러 직후처럼 도시는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평범한 시민들은 고통받고, 악당들은 혼란을 틈타 활개 친다.

그렇기에 두 드라마는 주인공이 사건을 파헤치며 스스로의, 나아가 도시의 트라우마를 치유해 나가는 심리극으로도 읽힌다. 제시카 존스는 제시카가 킬그레이브의 또 다른 피해자를 도우면서, 데어데블은 황폐화된 도시가 재개발되는 틈을 타 벌어지는 건설회사 비리 사건을 파헤치며 시작한다. 둘의 영웅다움은 고통이 클수록 부각된다. 인간을 영웅으로 만드는 요건―고난 앞에서 포기하지 않는 것―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마블은 알고 있는 듯하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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