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서 보니]박진형/사스에 우는 중국…溫情이 투자다

  • 입력 2003년 5월 30일 18시 3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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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에 관한 중국 TV의 한 공익광고가 눈길을 끈다. 이런 내용이다. 의료장갑과 마스크로 중무장한 여의사가 집으로 전화를 한다. 전화를 받은 어린 딸이 대화 중에 간절한 소리로 울먹인다. “엄마 빨리요….” 사스와의 사투 현장을 지키느라 오래 집을 비운 엄마를 보고 싶어 하는 딸의 절규다. 의사는 “그래, 엄마가 빨리…”라며 전화를 끊는다. 엄마의 눈에는 눈물이 흐르지만 곧 전투에 나서는 군인처럼 결연한 표정으로 보안경을 쓰고는 환자에게 돌아간다. 사스가 빨리 퇴치되기를 바라는 중국인들의 간절한 마음과 중국 의료진의 영웅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중국은 지금 사스 퇴치를 위해 국가의 명운을 건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선진국을 향해 거침없는 행보를 거듭하던 와중에 닥쳐온 사스 파동은 정부는 물론 국민 모두에게 커다란 충격을 주고 있다. 베이징의 경우 도시가 봉쇄돼 한동안 생필품 값이 치솟고, 더운 날씨임에도 마스크 착용이 일반화됐다. 애완동물이 수난을 겪기도 하고, 가족들만 모인 가운데 결혼식을 치르고는 이를 동영상에 담아 인터넷으로 지인들에게 보내는 새로운 풍속도가 연출되기도 한다.

‘사스는 잠시, 경제 발전은 영원히’라는 신문 보도처럼 국제사회의 시선을 의식하며 외국인 투자유치 등 경제가 직접 영향받는 것을 경계하는 중국인들의 마음도 읽힌다. 필자가 중국인들과 함께 생활하며 느끼는 바닥 정서는 상처받은 국민적 자존심에 대해 이웃나라의 따뜻한 위로가 무엇보다 절실하다는 점이다. 중국에 진출한 많은 다국적 기업들이 사스의 추이에 촉각을 곤두세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상당한 규모의 사스 퇴치 의연금을 중국 정부에 헌납하고 있다. 어려움을 겪는 중국을 도우면서 사스 이후를 대비한 기업 이미지 관리도 도모하는 것이다.

지금 중국의 상황은 1989년 톈안먼(天安門)사태 당시와 비교되는 면이 많다. 당시 정치적 소용돌이를 겪으며 많은 외국기업들이 미래가 불확실해 보이는 중국에서 철수했지만, 모험을 감수한 일부 기업들은 상당한 성과를 올렸다. 베이징의 강남이라 할 수 있는 둥싼환루(東三環路)의 중심에 옌사(燕沙)란 건물이 있다. 백화점, 호텔 등의 대규모 복합건물로 독일과 중국의 합작으로 건립되었는데 톈안먼사태로 독일측이 일부 지분을 헐값에 내놓았으나 구매자가 없었다. 이를 한 한국 기업이 인수했는데 현재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돼 있다.

한편 당시 경제 개방의 상징으로 중국이 의욕적으로 개최한 베이징국제박람회(BIF)에 외국관으로는 한국관이 유일하게 문을 열었다. 이 박람회 참가를 계기로 한국기업의 중국 진출이 본격화됐음은 물론 한중 수교의 밑거름이 됐다. 개인적으로는 중국 관리로부터 10년 전 참가 결정을 해준 KOTRA에 고맙다는 인사를 여러 차례 들은 적이 있다.

‘비단에 꽃을 얹기는 쉬워도, 눈보라에 땔감 보내기는 어렵다(錦上添花易, 雪中送炭難)’라는 중국 고사와 같이 어려움을 겪을 때 이웃이 보내주는 따뜻한 손길과 시선에 중국인들은 더욱 고마워하고 그 정(情)을 잊지 않는다. 우리 모두 도전을 기회로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한 때라고 생각된다.

박진형 KOTRA 베이징무역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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