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 내셔널 어젠다委 제안 5]정부조직

  • 입력 2002년 12월 31일 16시 46분


우리나라는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늘 ‘작은 정부론’을 표방하면서 정부조직개편을 추진했으나, 퇴임할 때에는 조직과 인원이 다시 팽창해 ’큰 정부’가 되는 일을 반복했다.

김대중(金大中) 정부에서도 5년 전 2원 14부 14청 25위원회로 출범했으나 1!?2차 조직개편으로 18부 4처 16청 35위원회로 늘어났다. 이대로는 안된다.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동아 내셔널 어젠다위원회’는 지난 1개월여 동안 바람직한 정부조직 개편 방향에 대한 논의를 진행한 결과, ‘대부처주의’를 기본으로 한 새 정부조직 모델을 만들었다.

어젠다위원회 정치분과위의 합의로 성안된 새 정부조직 모델의 골자는 현재의 18부 4처 16청 20위원회에서 6부 4처 3청 16위원회를 감축해 12부 13청 4위원회로 만들고, 현 24장관(급)을 헌법상 하한선인 15장관으로 줄이는 것이다. 12부 장관 외에 3명의 무임소 장관을 둬 대통령의 현안 프로젝트를 추진하게 할 수 있도록 했다.


이 같은 정부조직 개편안은 부처간 갈등과 비협조 해소, 중복조직 제거, 행정 효율화와 책임행정의 제도화, 과다한 위원회 조직 정비, 민간이양 확대 등을 우선 고려한 것이다. 선진국의 경우 행정부의 부처 수는 미국 14개, 일본 13개, 영국 17개, 호주 16개 등으로 대부분 우리보다 적다.

개편안의 구체적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대통령 직속의 집행기구를 없애 ‘제왕적 대통령’의 빌미를 제거한다. 비서실에는 3명의 수석비서관(정무, 외교안보, 총무)과 3∼4명의 정책보좌관(정부개혁, 지역균형발전, 민영화 등)을 두도록 한다. 이는 청와대가 행정부의 일상적인 일로부터 해방되어 국정의 비전제시와 대통령 프로젝트를 집중적으로 추진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이와 함께 통상적인 행정 조정업무를 국무총리가 담당하고 각 정책의 기획과 집행을 장관이 책임지는 책임총리제와 장관책임제를 도입한다.

둘째, 중앙행정기관의 경우 기획예산처와 국무조정실을 기획조정부로, 교육인적자원부와 과학기술부를 교육과학부로, 통일부와 외교통상부를 외교통일부로, 환경부와 문화관광부 및 국정홍보처를 문화환경부로, 농림부와 해양수산부를 농림수산부로, 산업자원부와 정보통신부 및 중소기업청을 정보산업부로, 보건복지부와 여성부 및 노동부를 보건복지부로 각각 통합한다. 공정거래위는 재정경제부로, 중앙인사위원회는 행정자치부로 각각 합친다.

셋째, 헌법에 근거를 둔 4개의 위원회를 제외한 16개의 위원회를 전면 폐지 또는 정비한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부패방지위원회, 노사정위원회, 제2건국위원회, 지속가능발전위원회, 정책기획위원회, 교육인적자원정책위원회, 의약발전특별위원회는 폐지한다. 정부혁신추진위원회의 기능은 대통령 비서실 정책보좌관으로, 중소기업특별위원회는 정보산업부로, 국민고충처리위원회는 법무부로, 비상기획위원회는 국방부로, 청소년보호위원회는 보건복지부로 통합한다. 금융감독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이를 통합해 한국은행으로 이관한다.


넷째, 처의 폐지와 외청의 통폐합을 통해 공공부문의 효율화를 추진한다. 예로써 국세청과 관세청 및 해양경찰청과 경찰청의 통합, 농촌진흥청 폐지, 특허청의 교육과학부 이관, 철도청의 공사화를 들 수 있다. 법제처는 총리 산하 법제실로, 국가보훈처는 보건복지부 산하 보훈청으로 하되 기관장은 현행대로 차관으로 유지한다.

다섯째, 각 행정부처를 대부처로 통폐합하는 데 따른 행정 수요 증대를 감안해 부처마다 2,3인의 차관을 두되, 차관보는 폐지해야 한다.

이러한 개편이 성공하려면 일단 장관 수 축소 등 큰 골격만 바꾼 상태로 시작하되, 국 과 등 하부 조직과 인원은 행정조직의 안정을 위해 철저한 경쟁원칙에 따라 점진적 단계적으로 감축해 일정기간(5년) 이후 개혁 목표를 자율적으로 달성토록 할 필요가 있다.

이는 공무원 수의 기계적인 감축에 초점을 둔 과거의 개혁과 다른 점이다. 일본의 경우 대부처주의로 정부조직 개편을 이루는 데 6년이 걸렸다.

각 부처 산하기관이나 관련 연구소도 통폐합 등을 통해 경쟁력을 증대시키고 비효율적인 관리기능을 축소해야 한다. 700여 정부산하기관의 경우 중앙정부의 몇 배에 달하는 예산과 인원을 보유하고 있지만 그 동안 그 숫자마저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는 등 관리가 잘 이루어지지 못했다. 이 부문에 대한 효율적인 관리를 위한 ‘정부산하기관관리기본법’이 국회에 계류중인 만큼 이 법부터 통과시켜 관리의 법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대표집필 김석준 이화여대 교수 행정학

▼日-뉴질랜드 성공사례▼

정부조직 축소, 공무원 감축에 성공한 나라들은 치밀한 계획을 세워 점진적·장기적으로 이를 추진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일본은 ‘거품경제’ 붕괴에 직면해 96년부터 2002년까지 1부 22성청인 정부조직을 1부 12성청으로 대폭 축소하는 ‘혁명’을 단행했다. 일본 정부 조직 개편은 부처이기주의 배제, 책임 행정, 행정의 투명화 및 슬림화 등을 목표로 추진됐다.

외국과의 경쟁력을 고려해 총리부의 기능을 강화하는 대신, 우정성!?자치성!?총무청을 총무성으로 통폐합하며 문부성과 과학기술청을 문부과학성으로 합치고 후생성과 노동성은 후생노동성으로, 건설성!?운수성!?북해도개발청!?국토청은 국토교통성으로 통합했다.

이 과정에서 이해 관계집단이나 공무원들의 반대도 많았지만 여론과 국회의 강력한 지원으로 먼저 관련 법률을 처리하고 이에 따라 단계적으로 조직을 축소해 나갔다.

일본은 이와 함께 10년간 25% 이상의 공무원을 감축한다는 목표하에 성청별로 2개년 또는 5개년 단위의 인원 삭감 계획을 지금도 착실히 추진하고 있다. 기본적으로는 1년에 국가 공무원 1% 정도씩을 부처별로 할당해 강제로 감축하는 것이 기본 구상이다.

뉴질랜드는 1980년에서 1994년 사이 중앙부처의 공무원을 61%나 감축했다. 뉴질랜드는 이를 위해 포괄적이었던 정부 각 조직을 단일 목적 조직으로 바꾸고, 정책기능과 관리 및 집행기능을 분리해 정책부분을 제외한 다른 기능은 과감히 공기업화하거나 민영화하는 방법을 도입했다. 공기업의 경우도 관리의 제일 원칙을 민간기업처럼 ‘효율 우선’으로 정하고 상업적인 기준으로 관리성과를 평가하도록 하는 등 사실상 민영화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이 같은 노력의 대표적인 예가 정부 부처였던 우정청을 우정공사, 체신은행, 우정통신 등으로 분할하여 공기업으로 개편한 것이다.

그 결과 공무원 상당수가 공기업과 독립기관으로도 옮긴 뒤 다운사이징과 조직개편, 합리화조치, 민영화 등으로 14년 사이에 5만2000여명이 자연스럽게 감축됐다.

이현두기자 ruchi@donga.com

▼김광웅 당시 실행위원장 인터뷰▼

김광웅(金光雄·전 중앙인사위원장)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98년 1월 정부조직개편위 실행위원장을 맡아 현 정부의 정부조직 개편작업을 주도했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김대중 정부의 정부조직 개편 방향은 무엇이었나.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상황에서 사람과 예산을 줄이려는 대통령당선자와 국민 요구를 반영하는 한편 분권과 권한 위임을 원칙으로 대통령 총리 특정부처 장관에 집중된 권한을 분산시켜 진정한 민주정부를 만드는 게 기본 목표였다.”

―부처 통폐합 등 조직 축소가 쉽지는 않았을 텐데….

“부처 통폐합시 없어지는 직제가 많은데 이에 대해 공무원들은 거의 패닉(panic) 상태에 빠져 모든 수단을 동원해 로비한다. 이 때문에 국회 입법심의 과정에서 왜곡이 발생한다. 정부조직 개편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정치권이 개혁 취지를 지켜줘야 하고 언론과 국민이 이를 감시해야 한다.”

―실제 정부조직 개편에서 당초 취지가 변질된 것은 없었나.

“견제만이 좋은 것인 줄 알고 자꾸 위원회를 신설한 것은 잘못이다. 가령 행정자치부와 중앙인사위, 법무부와 부패방지위, 중소기업청과 중소기업특위 등 부처에 대한 견제 장치를 만들었으나 견제 기능은 못하고 기능 중복의 문제점만 야기했다는 지적에 동의한다. 또한 3차 조직개편에서 경제와 교육 부문의 부총리제를 부활시켰으나 이는 ‘옥상옥’을 만든 것이다. 수평적 조직과 네트워크가 중시되는 시대에 과거와 같은 조정 통제 간섭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은 시대역행적 발상이다.”

―청와대의 조직 기능 개편은….

“대통령비서실은 내각에서 하는 일에 간섭하기보다는 시대변화를 예견하고 앞서나가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갖고 대통령을 보좌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비서진의 사무실을 대통령 집무실 바로 옆에 둠으로써 접촉기회를 늘리고 각 부 장관도 수시로 대통령 집무실을 출입할 수 있도록 청와대 사무실 배치를 다시 해야 한다.”

▼관련기사▼

- [동아 내셔널 어젠다委 제안 4]통상정책
- [동아 내셔널 어젠다委 제안 3]인사정책
- [동아 내셔널 어젠다委 제안 2]대북정책
- [동아 내셔널 어젠다委 제안 1]한미관계

박성원기자 sw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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