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음악, 내 광고의 원천… 그리고 내 삶의 사운드 트랙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3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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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F감독 백영욱, ‘그 남자의 음악’을 말하다

영화 ‘아메리칸 허슬’로 아카데미상 감독상 후보로 선정된 데이비드 O 러셀 감독. ‘분노의 장고’로 아카데미상 각본상을 받은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 두 감독의 공통점이 있다면 스토리텔링만큼 탁월한 영화음악 선곡 능력이다. 타란티노 감독은 워낙 열렬한 1960∼1970년대 빈티지 LP판 애호가로, 시나리오를 쓸 때 몇 시간씩 음악을 틀어놓고 작업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의 영화들에 유난히 1960년대 엔니오 모리코네 음악과 1970년대 흑인 솔음악이 많이 들어간 이유다. 러셀 감독도 연출하는 작품마다 매번 꼼꼼하게 음악을 직접 선곡한다. 작년에 개봉한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에서는 평소 음원사용을 허락하지 않는 전설적인 록 밴드 레드 제플린에게서 직접 라이선스를 따내기도 했다.

감독마다 아이디어의 영감을 얻는 방법은 다양하다. 내 경우 광고 콘티를 구상할 때 음악을 많이 듣는 편이다. 워낙 음악을 좋아해서 그때그때마다 브랜드와 제품에 어울리는 광고 사운드트랙을 정하고 연출 콘티를 그린다. 예를 들면 다니엘 헤니가 출연한 ‘아웃백 스테이크하우스 호주편’을 연출했을 때는 롤링스톤스 앨범을 많이 들었다. 키스 리처드의 거친 기타를 들으며 호주의 햇살과 대자연에서 스테이크를 굽는 헤니의 촬영 컷들을 하나하나씩 떠올렸다. 마찬가지로 ‘대한항공 A380’ 광고를 구상할 때에는 영화 작곡가 반젤리스와 존 윌리엄스의 음악을 반복하며 들었다. 거대한 스케일의 A380이었기에 그만큼 웅장하고 큰 출발을 알리는 음악이 필요했다.

백 감독(가운데)이 다니엘헤니(오른쪽)와 CF 찍는 모습.
백 감독(가운데)이 다니엘헤니(오른쪽)와 CF 찍는 모습.
촬영에 돌입하면 대개는 음악을 틀어놓고 진행한다. 곡조에 맞춰 배우들의 감정을 이끌어내기도 쉽고, 촬영장 분위기를 전반적으로 지휘하기도 쉽다. 콘티를 구상할 때 들었던 음악을 모두 담아 촬영할 때 그대로 튼다. 음악에서 스며 나오는 악기 소리 하나하나가 아이디어의 초심을 고스란히 담아 촬영하는 인물, 조명, 소품들에 전이되는 성스러운 의식과 같다, 나중에 편집에도 도움이 된다. 선곡에 따라 전체적인 편집감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해외 광고를 연출하다 보면 외국 대행사에서 음악에 대한 자문을 받는다. 본인들이 쓰고 싶은 음악의 방향을 얘기하고, 그에 대한 감독의 생각을 듣고 싶어 한다. 국내에서는 가사와 멜로디가 귀에 익은 유명 곡을 쓰는 반면, 외국 대행사는 가사를 광고 카피의 연장선으로 보는 전략적 마인드로 접근한다. 자신들의 메시지와 정확히 부합하는 곡을 찾지 못하면 곡을 제작한다.

외국 작곡가들과 일하다 보면 이들은 음악 외에도 문화와 인문학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다. 현대음악의 원천이 서양에서 시작되었기에 음악에 대한 이들의 생각도 깊을 수밖에 없다. 그것이 깊은 만큼 표현하는 감정의 대역도 다양하다. 간단한 예로 외국 광고는 음악에서 장조만큼 단조도 자주 쓴다. 광고가 슬픈 내용을 담고 있어서라기보다 감정의 폭을 넓게 표현할 수 있어서 그렇다.

국내에서는 단조가 들어간 음은 웬만하면 광고에서 듣기 힘들다. 브랜드 이미지에 부정 탄다는 편견 때문에 장조가 지배적인 음악을 선호한다. 즐거워서 좋지만, 다른 광고 음악과 식별이 안 되는 단점이 있다. 다행히도 조금씩 변화가 나타난다. 국내 유명 자동차 캠페인에서 쓰이는 드뷔시의 ‘클레어 드 륀(달빛)’이 좋은 예다. 멜랑콜리하면서도 우아하다. 이런 곡들이 국내 광고에 조금 더 다양하게 들렸으면 좋겠다.

스마트폰의 등장 이후 길 가다가 사진 찍는 사람들을 많이 발견한다. 찍는 사람의 의도만큼 사진의 결과물도 느낌이 모두 다를 것이다. 나는 사진도 찍지만 매번 그 순간의 사운드트랙을 생각하면서 찍는다. 그 선율은 때로는 가볍고 때로는 엄청나게 무겁다. 다양한 인파 속에 묻히며 이동하는 음악, 다리를 건널 때 햇살이 철교 프레임 사이로 나를 때리는 음악, 점원이 아이스크림을 천천히 스쿠프에 담을 때 들리는 음악. 인생이라는 영화 속에서 매번 들리는 사운드트랙을 나는 광고 연출을 하며 지금 재구성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글=백영욱 매스메스에이지 CF감독

※ 백 감독은 프랑스에서 태어나 외교관인 부친을 따라 카메룬, 캐나다, 인도, 말레이시아, 미국 등에서 살며 다양한 국제 경험을 쌓았다. 2007년 그가 담당한 대한항공 ‘몽골’ 편은 대한민국 방송광고대상을 받았다. 삼성, LG, 대한항공, 네슬레, 아웃백스테이크, 카페베네 등 다수의 광고를 만들어 왔으며 지난해에는 단편영화 ‘한 잔’을 연출했다.

▼ 백영욱 CF감독 추천 음반 ▼

1.Album: Older
Artist: George Michael


1995년. 6년의 공백을 깨고 Older라는 타이틀로 3집을 발표한 조지 마이클. 발표 당시에는 큰 인기를 끌지 못했지만, 숙성된 포도주처럼 세월이 지나며 들을수록 데뷔작 Faith와 2집 Listen Without Prejudice Vol.1 보다 월등히 우수한 앨범. 재즈, R&B에 일렉트로닉을 가미하며 긴 공백을 음악성으로 보답하는 진정한 뮤지션의 모습을 보여준다.

2.Album: The Outernational Sound
Artist: Theivery Corporation


만약 불이 나서 5개의 음반만 들고 나올 수 있다면, 아마도 이 앨범이 그중 하나일 터. 빈티지 보사노바, 재즈, 레게, 동양음악, 영화음악, 록, R&B 등 장르를 불문하고 도저히 섞일 수 없는 음악을 왁자지껄 믹싱해 최고의 라운지 앨범을 만들어낸다. 그룹 이름도 재미있게 음악을 여기저기서 훔친다는 의미로 Thievery Corporation(도둑질 회사?)이라고 지었다.

3.Album: The Virgin Suicides OST
Artist: 홀리스, 알 그린, 길버트 O 설리 번, 에어 외 다수


소피아 코폴라(‘대부’를 연출한 거장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딸) 감독의 영화 입봉작 사운드트랙은 버릴 것이 하나도 없는 완벽한 앨범이다. 1970년대 추억의 팝송들과 프랑스 일렉트로닉 듀오 Air의 스코어까지 적절하게 버무려 영화와 또 다른 내러티브 스토리를 제공한다.

4.Album: Songs in The Key of Life
Artist: Stevie Wonder

1976년 발매돼 스티비 원더의 베스트 모음집이라 해도 손색이 없는 정규 앨범. 당시 사회적 이슈 및 빈곤과 인류에 대한 희망 등 다양한 소재를 다뤘다. 심각한 소재들임에도 불구하고 밝고 펑키한 톤으로 풀어내 당시 빌보드 앨범차트 1위를 14주 동안 기록. 스티비 원더의 트레이드마크 곡들이 이 한 앨범에 모두 실렸다.

5.Album: Setting Standards: The New York Sessions
Artist: Keith Jarrett Trio


재즈 스탠더드를 새롭게 상기시키기 위해 키스 재럿 트리오가 1980년대 초 녹음한 앨범. 많은 키스 재럿 팬들이 이 앨범을 키스 재럿 트리오 최고의 작품으로도 간주한다. 비 오는 날 특히 가슴에 착 달라붙는 앨범.

6.Album: The Social Network OST
Artist: Trent Reznor and Atticus Ross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또 다른 영화 ‘파이트 클럽’ OST를 작업한 Dust Brothers를 연상케 하면서도 Massive Attack, The Prodigy의 강한 비트와 테크노 리듬이 군데군데 녹아 들어가 있는 훌륭한 일렉트로닉 앨범.

7.Album: The Untouchables OST
Artist: Ennio Morricone


남들은 ‘미션’이나 ‘시네마 파라디소’를 기억하지만 엔니오 모리코네 하면 나는 뭐니뭐니 해도 ‘언터처블’ 스코어가 가장 먼저 머릿속에 맴돈다. 재치 있고 장난기 있으면서도 때로는 어둡고 무거운 테마들이 공존하는 앨범. 메인 테마는 마치 그의 스파게티 웨스턴 영화를 연상하듯 웅장하면서도 금관악기를 적절히 사용한 명곡 중 하나.

8.Album: Led Zeppelin: The BBC Sessions
Artist: Led Zeppelin


1969∼1971년 ‘레드 제플린‘이 한창 뜨기 시작할 때 방송국 공연과 데모로 녹음한 곡들을 모아놓은 라이브 앨범. 지미 페이지의 기타, 존 본햄의 미친 드럼 롤, 존 폴 존스의 베이스 등이 날로 연주되는 사운드는 온몸에 전율을 느끼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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