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서울 용산구 주한 이란이슬람공화국 대사관에서 사이드 쿠제치 이란 주한 대사가 공식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2026.3.5. 사진공동취재단
주한 이란과 이스라엘 대사관이 5일 서울에서 각각 기자회견을 열고 중동 전역으로 확산하고 있는 전쟁 책임을 떠넘겼다. 이란은 미국과 이스라엘의 침략행위에 따른 정당방위라고 강조했고, 이스라엘은 이란이 북한처럼 핵무기를 개발하기 전에 선제적 저지가 필요했다며 맞섰다.
사이드 쿠제치 주한 이란대사는 5일 오전 서울 용산구 동빙고동 주한 이란대사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란은 국제법과 국제규범을 위반한 심각한 침략 행위에 대한 정당방위를 하고 있다”며 “이를 보복 공격으로 볼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전쟁 장기화가 예상된다고 밝히며 미국이 지상군 투입을 감행한다면 대규모 인명피해를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쟁이 길어질 수 있고, 이란은 준비돼 있어”
쿠제치 대사는 “이란은 언제나 대화와 협상의 길을 중요하게 여기나, 상대가 전쟁의 길을 선택한다면 침략자에게 맞설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미국과 이스라엘이 공격 명분으로 제시한 ‘이란 핵무기 개발’은 근거 없는 허위 정보라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침략적 행보를 보이는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정권을 위해 아낌없는 지원을 제공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4일(현지 시간) 쿠르드족 무장단체의 이란 진입에 대해 미국이 배후일 가능성을 제기했다. 또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지 않았고, 사우디아라비아와 카타르 등 걸프국의 에너지시설 공격 역시 이스라엘 모사드와 미국 중앙정보국(CIA) 요원의 소행으로 추정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미국이 중동 아랍국 군사기지를 이용해 이란을 공격하고, 의회에 국방 예산 증액을 요청하는 상황을 볼 때 전쟁이 길어질 수 있고 이란은 준비가 되어 있다”고도 했다.
휴전 협상 개시를 위한 조건으로는 “이란에 대한 침략이 중단되어야 한다”며 “현재 이란은 불법적이고 전격적인 공격을 받고 있어 그 어떤 협상 테이블에도 앉을 수 없다”고 했다. 핵협상과 관련해서는 “기술적 신뢰 구축 조치를 위한 협력에 항상 열려 있으면서도, 우라늄 농축을 포함한 우리의 합법적 권리를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북한 비핵화를 지지한다는 기존 이란 정부 입장도 재확인했다. 그는 “이란은 전 세계의 비핵화를 지지한다”며 “이란은 핵무기 개발을 추구한 적이 없고, 국제사회가 중동 유일의 핵보유국 이스라엘을 묵인하고 있다”고 했다.
북한이 미국과 이스라엘 규탄 성명을 낸 것과 관련해 “북한은 이란의 우방국”이라며 “규탄의 목소리를 내준 것에 대해 감사를 표한다”고 했다.
5일 라파엘 하르파즈 주한 이스라엘 대사가 서울 종로구의 한 비즈니스 센터에서 이란과의 전쟁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열고있다.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이스라엘 대사 “북한 핵 보유에서 교훈 얻어…한국은 이스라엘 이해할 것”
반면 라파엘 하르파즈 주한 이스라엘 대사도 이날 오전 서울 광화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란의 핵무기 개발 시도를 좌시할 수 없었다며 이란 공습을 정당화했다. ‘이란의 핵·탄도미사일 개발 저지’와 ‘이란 시민들의 자유’를 위한 정당한 군사작전이었다는 주장도 반복했다.
그는 “이란은 수십 년 동안 핵 개발 프로그램과 관련해 국제사회를 속여왔고, 그들에게 기회를 주는 건 핵 개발 시간을 더 벌게 해주는 것”이라면서 “핵 무기 개발 저지 뿐 아니라 이란 정권에서 핍박받고 살상된 무고한 시민들이 자유를 갖고 원하는 미래를 꿈꿀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이번 작전의 목적 중 하나”라고 했다.
핵무기 보유국인 북한도 여러차례 언급했다. 하르파즈 대사는 미국이 북한 영변 핵시설 선제공격 일보 직전까지 갔던 1994년 1차 북핵 위기를 거론했다. 그는 “(북한을 보고 )저희가 행동을 취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교훈을 얻었다”며 “당시는 (군사) 행동을 취하지 않았고 그 결과 우리는 지금 40~60개의 핵탄두를 보유한 북한을 마주하고 있다”고 했다. 북한의 핵 무기 개발을 ‘반면교사’ 삼아 이란의 핵무기 완성을 막기 위해 선제적으로 군사작전을 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그러면서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한 급진적 폭력 국가와 이웃하고 있는 (이스라엘이 느끼는) 위험을 한국보다 더 잘 이해하는 곳은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한 하르파즈 대사는 그간 이스라엘이 한국 정부를 위해 북핵 문제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왔다는 점을 강조하며, 이번 사태와 관련한 한국 측의 지지를 당부하기도 했다. 그는 “북한과 이란은 굉장히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 온 국가”라면서 “이스라엘은 한국에서 북핵 위협이 있을 때마다 북한의 도발에 대해 많은 비난을 해왔다”고 했다.
이번 전쟁이 얼마나 지속될 지 여부에는 “이미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끝없는 전쟁(endless war)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고 답을 대신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이란의 한 여자초등학교에서 175명의 학생이 숨지는 등 민간 피해가 크다는 질문이 나오자 “이스라엘은 의도적으로 민간 시설을 한 번도 타격한 적 없다”며 “이란에는 언론의 자유가 없다. 가짜뉴스에 현혹되지 않길 바란다”고 선을 그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