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판 타워링’…초고층 아파트 밀집 건축 구조가 화재 키워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11월 28일 03시 00분


[홍콩 고층 아파트 화재 참사]
강풍에 불길 번져 279명 실종… 실종자 대부분 건물 안에 갇혀있어
보수공사 대나무 비계, 화재 키워
외신들 “中 반환뒤 최악의 참사”… 시진핑 “희생자 애도, 구조에 최선”

27일 홍콩 북부 타이포 지역의 고층 아파트 단지 ‘웡푹코트’에서 검은 연기가 치솟고 있다. 전날 오후 이곳에서 발생한 대형 화재로 최소 65명이 사망했다. 타이포=신화 뉴시스
27일 홍콩 북부 타이포 지역의 고층 아파트 단지 ‘웡푹코트’에서 검은 연기가 치솟고 있다. 전날 오후 이곳에서 발생한 대형 화재로 최소 65명이 사망했다. 타이포=신화 뉴시스
26일 홍콩 북부 타이포 지역의 고층 아파트 단지에서 발생한 대형 화재로 최소 65명이 숨졌다. 당초 279명으로 발표된 실종자 대부분이 아직 구출되지 못했고, 부상자 중 중상자도 많아 인명 피해 규모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외신들은 “1997년 홍콩이 영국에서 중국으로 반환된 후 최악의 참사”라고 전했다.

세계적으로 인구밀도가 높은 지역 중 하나로 꼽혀 초고층 건물을 밀집해 짓는 홍콩의 건축 환경이 피해를 더욱 키웠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여기에 보수 공사를 위해 건물 외부에 설치해 놓은 가연성 자재들이 불길을 빠르게 옮기는 매개체가 됐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 비싼 땅값에… 초고층 밀집 구조가 화재 키워

홍콩 소방 당국에 따르면 26일 오후 2시 51분 타이포 지역의 고층 아파트 단지인 ‘웡푹코트’에서 화재 신고가 접수됐다. 첫 신고 후 10분 만에 검은 연기가 하늘 높이 치솟고, 화염이 건물 전체를 덮쳤다고 목격자들은 전했다. 강풍을 타고 확산된 불길은 단지 내 8개 동 가운데 7개 동으로 빠르게 번졌다.

홍콩 당국은 이날 오후 6시 22분쯤 화재 경보 단계 중 가장 높은 5급으로 경보 단계를 격상했다. 내부에 가족이나 지인이 갇혀 있다는 신고가 이어졌지만, 소방관들은 건물 내부의 뜨거운 열기와 떨어지는 파편 탓에 내부 진입에 어려움을 겪었다. 불이 난 건물 7개 동 중 4개 동은 27일 새벽이 돼서야 진화됐고, 나머지 3개 동은 이날 오후까지도 불길이 완전히 잡히지 않았다. 이번 화재로 27일 오후 9시 기준으로 소방관 1명을 포함해 65명이 숨지고, 70명이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실종자 대부분이 아직 건물 안에 갇혀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만큼 사상자 수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홍콩 당국은 이번 화재가 27시간 만에 진화됐다고 밝혔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이번 화재는 1996년 주룽(九龍) 지구 빌딩 화재로 41명이 숨진 이후 홍콩 최악의 화재”라고 전했다.

홍콩은 전 세계 주요 도시들 중 인구밀도가 최상위권에 속하는 지역이다. 이로 인해 주택 가격이나 임대료도 매우 비싼 편. 주택을 지을 땅이 부족하다 보니 초고층 건물들을 다닥다닥 붙여 조성하는 주거단지가 많다. 이번에 화재가 난 ‘웡푹코트’ 역시 31층짜리 8개 동이 밀집된 형태다. 최명기 서울디지털대 건설시스템공학과 교수는 “홍콩 아파트들은 건물 사이의 거리가 매우 좁아 화재가 날 경우 인근 건물로 빠르게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특히 이곳은 1983년 준공돼 지어진 지 40년이 넘은 공공 아파트 단지로 48∼54m² 크기의 소형 주택 위주다. 현재 약 2000가구에 4800여 명이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사고 당시 아파트 외벽을 따라 설치된 대나무 비계도 화재를 키운 요인으로 분석된다. 40년이 넘은 건물은 보수를 받아야 한다는 홍콩 당국 규정에 따라 해당 단지는 지난해 7월부터 보수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최근에는 중국 본토를 비롯해 많은 나라에서 금속 비계 사용이 의무화됐지만, 홍콩은 가격이 싸다는 이유로 화재에 취약한 대나무 비계를 사용해 왔다. 실제 이번 화재 참사 현장에서 ‘딱딱’ 하는 대나무 타는 소리가 계속 들렸고, 비계와 그물망을 타고 불이 순식간에 번졌다는 목격자 증언이 나왔다고 홍콩 밍보가 보도했다.

아직 정확한 화재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가운데 공사장 작업자들이 대나무 비계에서 담배를 자주 피웠다는 증언도 나오고 있다. 홍콩 소셜미디어에선 이번에 화재가 난 단지로 추정되는 건물의 비계 위에서 작업자들이 담배를 피우는 장면의 영상이 퍼지고 있다. 화재 당시 경보가 울리지 않아 입주민의 약 40%인 노인들이 신속히 대피하지 못했다는 의혹도 제기된다.

● 보수 공사 업체 관계자 3명 긴급체포

홍콩 경찰은 27일 건물 보수 공사를 담당한 업체의 임원 2명과 컨설턴트 1명 등 3명을 과실치사 혐의로 긴급 체포했다. 현재까지 진행된 수사 결과 건물 외벽에 설치된 그물망과 방수포, 비닐 시트 등이 화재 안전 기준을 충족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공사로 인한 손상을 막기 위해 엘리베이터 창문에 부착한 스티로폼 역시 인화성이 높아 화재가 커지는 단초를 제공한 것으로 보인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26일 성명을 통해 희생자들에 대해 애도를 표하고 구조와 피해 복구에 최선을 다할 것을 촉구했다.

이번 화재로 다음 달 7일 열리는 홍콩 입법회(의회) 선거와 관련된 활동이 전면 중단됐다. 존 리 홍콩 행정장관은 향후 선거 진행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로이터는 “홍콩의 막대한 부동산 가격이 오랫동안 주민들의 사회적 불만으로 작용해 왔다”며 “이번 화재 참사가 입법회 선거를 앞두고 당국에 대한 분노로 번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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