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민간 용병회사 ‘바그너그룹’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지난달 23일 무장 반란을 일으켜 하루 만에 모스크바 200km 앞까지 진격했을 당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사진)이 집무실 크렘린궁을 떠나 모스크바 밖으로 피신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러시아 정부가 일각에서 제기됐던 푸틴 대통령의 피신설을 줄곧 부인했던 것과 대치된다. 사실이면 푸틴 정권이 프리고진의 반란을 생각보다 훨씬 중대한 위협으로 받아들였음을 보여준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석유회사 ‘유코스’를 운영하며 한때 러시아 최고 부호로 군림했지만 푸틴 대통령과의 불화로 해외로 망명한 미하일 호도르콥스키는 5일 미국 시사매체 뉴스위크와의 인터뷰에서 “반란 당시 그(푸틴)가 정말 모스크바를 벗어난 것으로 보인다. 저택이 있는 발다이로 갔을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발다이는 모스크바에서 북서쪽으로 약 400km 떨어져 있다.
호도르콥스키는 푸틴 대통령의 전용 비행기가 지난달 24일 모스크바를 출발해 북서쪽으로 향했고 발다이 주변 어디에선가 추적이 끊겼다고도 했다. 당시 푸틴 대통령 외에도 러시아 고위 지도자 여러 명이 모스크바를 떠났었다고 했다.
러시아 독립 매체 ‘커런트타임’ 또한 미 항공기 추적 전문 웹사이트 ‘플라이트레이더24’를 인용해 푸틴 대통령의 전용기 ‘일류신(IL)-96’이 지난달 24일 오후 2시 16분 모스크바를 떠났다고 전했다. 이 비행기는 23분 후 발다이와 가까운 트베리 서쪽에서 추적이 끊겼다.
푸틴 대통령과 프리고진의 협상을 중재한 후 프리고진의 벨라루스행을 도왔던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은 6일 미 CNN에 “프리고진이 현재 러시아 2대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다”고 밝혔다. 푸틴 대통령과 프리고진은 모두 상트페테르부르크 출신이다.
5일 러시아 국영 ‘로시야1 방송’은 이날 경찰 특수부대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프리고진 저택 및 사무실을 급습하는 장면을 공개했다. 사무실에 놓인 약 6억 루블(약 85억 원) 뭉치, 자택의 미 달러화 다발, 변장용 가발 등이 등장했다. 러시아 내에서 프리고진의 이미지를 깎아내리려는 시도의 일환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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