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바이든 취임축시, 플로리다주 학교서 금서됐다…왜?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5월 25일 16시 3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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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월 당시 23세의 나이로 조 바이든 대통령의 취임식에서 자작시 ‘우리가 오를 언덕’을 낭송하고 있는 어맨다 고먼. 그는 분열로 지친 미국 국민들에게 치유의 메시지를 던지며 일약 스타덤에 올랐지만, 최근 미 플로리다의 한 학부모가 그의 시집에 대해 “간접적인 혐오 메시지를 담고 있다”며 학교 도서관 비치 금지 신청을 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처참하다”는 심정을 밝혔다.  동아일보DB
2021년 1월 당시 23세의 나이로 조 바이든 대통령의 취임식에서 자작시 ‘우리가 오를 언덕’을 낭송하고 있는 어맨다 고먼. 그는 분열로 지친 미국 국민들에게 치유의 메시지를 던지며 일약 스타덤에 올랐지만, 최근 미 플로리다의 한 학부모가 그의 시집에 대해 “간접적인 혐오 메시지를 담고 있다”며 학교 도서관 비치 금지 신청을 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처참하다”는 심정을 밝혔다. 동아일보DB

2021년 1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취임식에서 자작시를 낭송해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어맨다 고먼(25)의 시집이 플로리다의 한 초등학교에서 ‘금서’로 제한했다.

문제의 시집은 당시 고먼이 낭독했던 ‘우리가 오를 언덕(the hill we climb)’을 표제작으로 한 동명 시집이다.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가 서문을 쓴 이 시집은 2021년 9월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해당 시에는 극심하게 분열된 국가에 대해 희망을 찾자는 내용이 담겨있다. 고먼은 이 시를 쓰던 기간에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벌인 1·6 의사당 난입 사태 등이 벌어진 만큼 미국의 분열상을 반영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미 플로리다 마이애미-데이드 카운티에 위치한 ‘밥 그레이엄 교육 센터’의 한 학부모가 ‘부적절하다’라며 불만을 제기하면서 고먼의 시집이 초등학생용 도서관에서 금지됐다고 미 마이애미해럴드 등이 보도했다. 이 학교는 우리나라의 유치원부터 중학교 과정까지를 통합운영하는 학교다.

시민단체 ‘플로리다의 읽을 자유 프로젝트(FFTRP)’가 공개한 문서에 따르면 금지 요구서를 작성한 것은 두 자녀를 이 학교에 보내고 있는 학부모 데일리 샐리너스였다. 그는 3월 제출한 요구서에서 ‘우리가 오를 언덕’이 “교육적이지 않고 간접적으로 혐오 메시지를 담고 있다”라며 “학생들을 세뇌시킬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문제가 되는 부분을 특정하지 않았을뿐더러, 시집의 저자를 고먼이 아닌 윈프리로 잘못 기재한 것으로 나타났다.

학교는 요구를 접수한 뒤 약 일주일 만에 고먼의 시집을 중학생용 도서관으로 옮겨두기로 했다. 학교의 검토위원회는 고먼이 대통령 취임식에서 시를 낭송한 최연소 시인이자, 2017년 미국의 첫 ‘청년 계관시인’으로 선정되는 등 역사적 맥락에서 의미가 있다는 점을 인정했지만, “시에 사용된 어휘들이 중학생에게 더 적합하다”는 판단을 내렸다고 미 NPR방송은 전했다.

논란이 커지자 학교 측은 “책이 옮겨졌지만, 교내에서 금지된 것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미 워싱턴포스트(WP)는 “초등학생이 사서에게 책을 읽고 싶다고 요청하고 자신이 중학생 수준의 책을 읽는다는 점을 증명하지 않으면 고먼의 시집을 읽을 수 없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고먼은 24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참담하다”라며 “어린이들이 문학 작품을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발견할 기회를 박탈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를 빼앗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커린 잔피에어 백악관 대변인도 같은 날 성명을 통해 “책을 금지하는 것은 검열이며, 미국 국민의 자유를 억압하는 행위”라고 비판하며 고먼을 지지하겠다고 밝혔다.

미 CNN 방송은 “공화당 소속 론 디샌티스 주지사가 취임한 뒤 플로리다에서 학생들에게 인종차별이나 성소수자 등의 논쟁적 주제에 대해 가르치지 말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소위 ‘부모의 권리’ 법안들이 도입되며 나타난 결과”라고 설명했다. FFTRP 관계자는 NPR에 “이번 조치는 현재 플로리다에서 매우 전형적으로 일어나는 일”이라며 “관련 법률의 모호함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조사나 처벌을 받을까봐 두려워한다”고 말했다.

도서관에서 특정 책에 대한 접근을 제한하려는 시도는 플로리다 밖에서도 점점 더 많이 벌어지고 있다. 전미도서관협회(ALA)는 지난해 도서관이나 도서에 대해 이뤄진 검열 시도가 총 1269건으로, 20여 년 전 조사를 시작한 이래 가장 많은 숫자였다고 밝혔다.

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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