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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국제

美 뒷마당 좌파물결… ‘대만 수교국’ 온두라스에 친중 정권 탄생

입력 2021-12-01 03:00업데이트 2021-12-01 0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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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쿠데타 축출 前대통령 부인, 쿠데타 반대시위 이끌며 정치 입문
3차례 도전 끝 중미 첫 女대통령에… “中과 수교” 공약에 美-中 대리전
중남미 ‘친중 도미노 현상’ 올 수도… 美 “대만과 외교 유지를” 설득 나서
온두라스 첫 女대통령… 12년만에 좌파정권 온두라스의 첫 여성 대통령이 유력한 시오마라 카스트로 자유재건당 대통령 후보가 지난달 28일 치러진 대선에서 승리를 선언한 뒤 수도 테구시갈파의 선거본부에서 웃고 있다. 테구시갈파=AP 뉴시스
온두라스에서 중앙아메리카 첫 여성 대통령 탄생을 눈앞에 두고 있다. 2009년 쿠데타로 축출된 마누엘 셀라야 전 대통령 부인 시오마라 카스트로 온두라스 자유재건당 후보(62)가 지난달 28일 치러진 대선에서 승리를 선언하고 나서면서다. 카스트로 후보의 당선이 확정되면 온두라스에선 12년 만에 정권이 교체된다. 최근 중남미에 다시 불고 있는 ‘핑크 타이드(pink tide·좌파 물결)’ 속에 미중 갈등의 대리전 양상으로 치러진 이번 대선에서 친중국 성향 카스트로 후보의 승리가 확실시되면서 일각에선 대만과의 단교 등 친중 도미노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지난달 29일 로이터 등 외신에 따르면 개표가 절반 넘게 진행된 가운데 카스트로 후보는 53.6%의 득표율로 여당인 국민당 소속의 63세 후보 나스리 아스푸라(33.8%)에게 20%포인트가량 앞서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날 오후 남편 셀라야 등과 선거 캠프에 몰려든 지지자들 앞에 선 카스트로는 “오늘 국민들은 정의를 실현했다. 우리는 독재를 물리쳤다”며 승리를 선언했다.

여성의 정치 진출이 드문 온두라스에서 여성 대통령이 처음 탄생한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16세 때 셀라야와 결혼한 카스트로는 남편이 중도우파인 자유당 후보로 대선에서 승리하면서 2006년 퍼스트레이디로 대통령궁에 입성했다. 주로 여성·복지 분야에서 활동하며 정치인 남편을 위한 내조에 집중했던 카스트로가 정치 전면에 나선 것은 군부 쿠데타 때문이다. 2009년 6월 남편 셀라야가 이른 새벽 대통령궁으로 몰려온 수백 명의 군인들에 의해 수갑이 채워진 채 코스타리카로 추방되자 카스트로는 쿠데타 무효와 남편 귀환을 촉구하는 시위대를 이끌며 여성 정치인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특히 셀라야가 망명생활을 마치고 온두라스로 돌아와 좌파 정당인 자유재건당을 만들었지만 대통령 단임제 헌법에 따라 대선 출마가 불가능해지자 카스트로가 2013년 대선에 직접 후보로 나섰다. 2017년 다시 후보로 나서 혁신통합당 후보와 단일화 과정에서 부통령 후보로 물러났다가 패배한 카스트로는 4년 만에 다시 치러진 대선을 통해 12년 만의 대통령궁 재입성을 앞두고 있다.

‘민주 사회주의자’를 자처하는 카스트로의 당선이 유력해지면서 일각에선 중남미의 ‘핑크 타이드’가 다시 거세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셀라야가 쿠데타로 축출된 것도 당시 ‘핑크 타이드’를 이끌던 우고 차베스 전 베네수엘라 대통령과 정치적 동맹을 맺은 것에 불만을 품은 군부의 반발에 따른 것이었다.

카스트로가 ‘중국과의 수교’를 통한 투자 유치를 선거공약으로 내걸었던 만큼 이번 대선 결과로 중남미에서 미중 갈등이 더 격화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온두라스는 대만과 외교관계를 맺고 있는 세계 15개국 중 하나다. 중국 관영 매체 글로벌타임스는 지난달 29일 “온두라스가 중국과 외교 관계를 맺으면 온두라스 인근 중미 국가들이나 카리브해 국가들에 도미노 현상을 일으킬 수 있다”고 전했다. ‘뒷마당’인 중앙아메리카를 중국에 내줄 수도 있다는 위기감에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최근 브라이언 니콜스 차관보를 온두라스에 보내 대만과의 외교관계 유지를 설득하고 나섰다. 팀 케인 민주당 상원의원은 로이터에 “외교 정책을 이래라저래라 하는 건 아니지만 (온두라스가) 중국과 더 가까운 관계 설정을 희망하는 건 이른바 ‘양털 깎기’를 당할 수도 있다는 걸 의미한다”고 했다. ‘양털 깎기’는 양털이 충분히 자랄 때까지 기다린 뒤 한꺼번에 털을 깎는 것처럼 중국이 투자 확대로 영향력을 최대한 높인 뒤 무리한 요구를 들이미는 방식으로 ‘약탈적 투자’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이다.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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