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래서 한국 등 동맹이 美 믿겠나”…바이든 항변에도 들끓는 여론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8월 19일 14시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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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아프가니스탄에서의 미군 철군 후폭풍으로 취임 이후 최악의 위기 상황에 직면했다. 예상과 다르게 흘러가는 아프간 내 아비규환 상황으로 국내외에서 거센 역풍이 몰아치면서 지지율도 뚝뚝 떨어지는데다 친정인 민주당에서까지 매서운 비판이 나오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비판을 다독이며 진화에 고심하고 있지만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다른 국정 어젠다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까 노심초사하는 분위기다.

●흔들리는 바이든 리더십에 쏟아지는 비판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A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혼란 없이 철군이 이뤄질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며 현재 상황의 불가피성을 주장했다. 그는 미국의 아프간 철군에 대해서도 “(전쟁 결과가)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철군 자체가 원인이 아니라 이후 아프간에 30만 명의 훈련된 군 조직과 정부가 싸워보지도 않고 도망치거나 투항한 것이 현재 상황을 야기했다는 것이다. 그는 아프간 현지의 처참한 장면들에 대해 “4, 5일 전 벌어진 일로, 일단 통제력을 되찾으면 더 신속하게 정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호언했다. 이어 “미군은 모든 미국인이 아프간을 떠날 때까지 현지에서 이들을 도울 것”이라며 안전한 귀환 지원을 강조했다. 아프간 내에는 아직 스스로를 미국인이라고 밝힌 사람이 1만 명 가량 남아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런 그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최근 바이든 대통령의 지지율은 급락하고 있다. 여론조사기관 입소스와 로이터통신이 16일 진행한 공동 조사결과 그의 지지율은 46%로 취임 7개월 만에 주간 기준 최저치까지 떨어졌다. 불과 사흘 전인 13일 같은 조사에서 53%었던 것과 비교하면 7%포인트 낮아졌다.

조만간 의회 청문회에서 바이든 행정부의 외교안보팀을 상대로 한 난타전이 이어지면 여론이 더 악화할 수 있다. 민주당인 밥 메넨데즈 상원 외교위원장은 청문회를 열어 철군 과정을 조사하겠다고 날을 세우고 있고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도 최근 휴회 기간 샌프란시스코 현지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 “하원이 이르면 다음주 의회로 조기 복귀해 외교위 청문회를 열 예정”이라고 밝혔다. 정보전의 실패와 관련해서는 마크 워너 상원 정보위원장이 “미국이 왜 ‘최악의 시나리오’에 더 잘 대비하지 못했는지를 따지는 청문회를 열겠다”고 성명에서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이 아프간의 참사가 연일 악화하는 시기에 대국민연설 직후 곧바로 별장으로 되돌아간 것에 대해서도 비판이 제기됐다. 그가 부통령이었던 2010년 아프간 철군을 주장하면서 이로 인해 현지 소녀들이 처하게 될 어려움에 대한 지적에 “엿먹으라고 해”라며 무시했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레온 파네트 전 국방장관은 폴리티코에 “대통령은 그가 내린 결정 뿐만이 아니라 그 결정을 어떻게 이행하느냐를 놓고 평가받는다”며 “나는 지금의 혼란이 불가피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오바마 행정부의 상황 오판에 대한 책임론 속에 테러 가능성도 다시 제기되고 있다. 미군의 무기들이 탈레반의 손에 통째로 넘어간 상황에서 미군의 무기로 미국이 당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과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강경보수 성향의 매체인 브레이트바트는 “전 세계가 바이든의 무능함과 실패에 혐오감을 느끼고 있다”고 했고,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서 백악관 대변인을 지낸 케일리 매커내니는 트위터에 “이런 사람이 우리의 군 최고통수권자라는 걸 믿을 수 없다”고 비난했다.

●방어 나선 백악관 참모들

참모들은 대통령 방어에 나섰다. 마크 밀리 합참의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누구도 아프간 군과 정부가 11일 만에 붕괴할 것이라는 징후를 보지 못했다”고 했다. 군 정보당국이 탈레반의 급속한 진격 가능성을 경고했는데도 바이든 대통령이 속전속결 철군을 밀어붙였다는 언론 보도를 부인한 것이다. 국무부, 국방부 당국자들은 바이든 대통령에 우호적인 의원들과 정책을 지지해온 우군들을 중심으로 의회 협조를 호소하고 있다. 앞서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직접 언론 브리핑에 나서 현황과 대응을 설명하며 했고, 블링컨 국무장관 등 고위 외교안보 인사들은 주요 동맹국 카운터파트와 일일이 접촉하며 상황 설명 및 협조 요청에 나섰다. 바이든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는 싱크탱크 전문가들도 찾아나서 설득 중이다.

백악관은 이날 바이든 대통령이 외교안보팀 고위인사들과 한자리에 모여 회의하는 사진을 트위터 등을 통해 배포했다. 지난 주말 캠프데이비드 휴가 중이던 그가 편한 옷차림으로 홀로 회의실에 앉아 화상회의를 하는 장면을 공개한 뒤 “한가하다”는 비난을 받은 때와는 달라진 모습이다. 백악관은 한동안 없었던 대통령의 언론 인터뷰 일정도 속속 잡고 있다. 18일 ABC방송 ‘월드뉴스 투나잇’과의 인터뷰에 이어 19일에는 ‘굿모닝 아메리카’에 출연키로 했다.

●“이래서 한국 등 동맹이 美 믿겠나”
아프간 철군 과정에서 드러난 바이든 행정부의 실책이 해외의 다른 동맹들에게 미칠 부정적 영향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이어지고 있다. 뉴트 깅그리치 전 하원의장은 이날 미군이 아프간 철군으로 빚어진 상황을 비판하며 한국 같은 동맹국들이 조 바이든 대통령의 리더십을 신뢰하기 어려워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공화당으로 도널드 트럼프를 지지해온 깅그리치 전 하원의장은 폭스뉴스 기고문에서 탈레반의 아프간 장악을 거론하며 “미국 정부가 20년 동맹으로부터 등을 돌리면서 발생한 리더십의 분명한 대형 실패를 전 세계가 목도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바이든 대통령이 얼마나 빨리 동맹으로부터 등을 돌리는지, 이게 미국에 얼마나 위험한지 보이느냐”고 힐난했다. 그러면서 “동맹으로부터 정신없이 달아나는 바이든의 결정을 전 세계가 지켜보는데 왜 대만이, 유럽이, 한국이, 혹은 다른 동맹이 바이든 대통령을 믿고 의지하려 하겠느냐”고 의문을 제기했다.

반면 미 싱크탱크 스팀슨센터의 클린트 워크 연구원은 이날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 기고문에서 한국과 아프간은 상황이 다르다는 점을 거론하며 주한미군 철수 가능성을 낮게 봤다. 그는 ‘서울은 카불이 아니다’는 제목의 글에서 “주한미군에 변동을 주는 것은 아프간 미군 철수보다 더 힘든 작업”이라며 “이런 일이 벌어질 경우 국제질서에 대한 미국의 비전에 근본적 재고가 이뤄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워싱턴=이정은 특파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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