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찌 장갑의 철주먹’ 펠로시가 트럼프 연설 원고 찢은 까닭[정미경 기자의 청와대와 백악관 사이]

정미경 기자 입력 2021-04-20 14:00수정 2021-04-20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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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를 하려는데 펜이 없더군요. 그래서 메모를 하려던 부분을 조금씩 찢어내기 시작했죠. 나중에는 아예 원고를 찢어버리기로 했습니다.”

지난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가운데) 신년 국정연설 때 뒤에서 연설 원고를 찢는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오른쪽) <USA투데이>
지난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신년 국정연설. 연설이 끝나자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81)이 뒤쪽에서 연설 원고를 찢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연설 시작 때 트럼프 대통령이 펠로시 의장의 악수를 청하는 손을 거절한데 대한 ‘보복’이라는 설이 유력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통령의 문서를 찢은 것은 위법 행위”라며 노발대발(怒發大發)했습니다. 공화당은 “의회 차원에서 꾸짖어야 한다”며 징계결의안을 상정하기 위해 표를 모으는 등 부산을 떨었습니다. 펠로시 의장은 논란이 분분한 상황에서 아무 해명도 하지 않았죠.

최근 출간된 펠로시 의장의 전기 ‘마담 스피커: 낸시 펠로시와 권력의 교훈’에 따르면 원고를 찢은 것은 “단지 펜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트럼프 리더십에 대한 도전으로 비춰졌지만 사실 자신의 행위는 “악의가 없었다”는 것이죠. 원고를 읽다가 체크해 둘 부분이 있어 펜을 찾았으나 마침 의장석 책상에는 펜이 없었다고 합니다. 할 수 없이 그 부분을 찢어내기로 했다죠. 미국 사람들이 곧잘 하는 방법입니다. 나중에는 하도 찢어낸 부분이 많아 원고가 너덜너덜해지자 “아예 찢어버리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펠로시 의장은 당시를 회상하며 “모든 소동은 ‘펜이 어디 있지?’라는 의문에서 시작됐다”며 웃었다고 합니다.

대통령 면전에서 연설 원고를 찢은 이유가 ‘펜이 없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비판가들의 주장대로 ‘대통령과의 갈등 때문’인지는 펠로시 의장 본인만이 알겠죠. 어쨌든 최근 미국에서 출간된 전기에는 앙숙 사이라는 펠로시-트럼프 관계에 대한 숨겨진 일화가 많이 등장합니다. USA투데이 워싱턴지국장인 수전 페이지 기자는 이 책을 쓰기 위해 팬데믹 와중에 펠로시 의장을 10회 이상 만났고, 주변 인물 100여명을 인터뷰했으며, 또한 과거 서류도 샅샅이 뒤졌다고 합니다. 책에는 펠로시 의장이 40대 후반에 정계에 뛰어든 사연, 여러 대통령들과의 관계, 미국 정치를 호령하는 여성 리더가 될 수 있었던 비결 등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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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A투데이 워싱턴지국장 수전 페이지 기자가 쓴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 전기 ‘마담 스피커: 낸시 펠로시와 권력의 교훈’이 20일 미국에서 발간됐다. <USA투데이>

“구찌 장갑을 낀 철주먹.” 미국 정가에서 펠로시 의장을 이렇게 부릅니다. 그녀는 의회 재산 조사에서 언제나 ‘톱10’에 드는 부호(富豪) 정치인입니다. 2015년 기준으로 3000만 달러(335억 원)를 넘나들죠. 옷과 장신구 모두 명품으로 도배합니다. ‘낮은 곳을 향하는’ 민주당 정치인으로 거대한 부를 갖췄으면 뒷소리가 나오기 쉽지만, 그녀는 좀처럼 욕을 먹지 않습니다. 자신의 위치에 만족하지 않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입니다. 성공의 덫에 빠지지 않고 언제나 투지에 불타는 ‘전투력 갑(甲)’ 정치인이죠. 뿐만 아니라 미국은 정치인의 개인적인 재산 축적과 능력은 별개 문제라고 보는 경향이 강합니다.

아버지는 필라델피아 하원의원과 3선의 볼티모어 시장을 거친 유명한 정치가였습니다. 전업 주부였던 어머니는 ‘얼굴 스팀 가습기’ 등의 특허를 출원했을 정도로 아이디어가 넘치는 여성이었죠. 펠로시 의장은 아들 5명 뒤에 낳은 막내딸이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에 대해 “활동적인 부모님과 많은 남자 형제들 사이에서 살아남으려면 ‘소극적 성격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배웠다”고 말합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거대한 와인 사업과 투자 전문가로 일하는 남편을 뒀습니다. 4녀 1남을 키운 그녀는 막내딸이 17살이 되는 1987년 샌프란시스코에서 하원의원에 당선되면서 전국적인 정치 무대에 등장합니다.

개인적 야망과 탄탄한 가문 출신, ‘리버럴의 성지’로 불리는 샌프란시스코에서 배운 정치 감각으로 그녀는 차근차근 성공 계단을 밟아갔습니다. 2001년 여성 최초의 민주당 원내총무가 됐고, 이듬해 원내대표에 당선됐습니다. 2006년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다수당이 되면서 하원의장에 당선됐습니다. 2007년 신년 국정연설 때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최초의 여성 하원의장으로 자신의 뒷자리에 앉은 그녀를 소개하며 “이 단어로 연설을 시작하는 대통령이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한다. 마담 스피커”라고 말했습니다.

미국 정치 속어에 “소시지를 잘 만들어낸다”는 말이 있습니다. 펠로시 의장이 좋아하는 말이기도 하죠. 그녀의 지론에 따르면 “잘 싸우기만 하는 정치인은 많다. 하지만 유권자의 표를 얻어 당선됐다면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것이 핵심”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녀는 정치권이나 여론의 회의적인 시선을 이겨내고 힘든 법안을 통과시키는데 명수로 통합니다. 당적은 달랐지만 부시 전 대통령을 도와 대기업 구제금융 법안을 밀어붙였습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때는 그녀의 지원이 있었기에 ‘오바마 케어’로 불리는 의료보험개혁안 통과가 가능했죠.

2007년 신년 국정연설 때 여성 최초로 하원의장에 오른 낸시 펠로시(오른쪽)를 축하하는 조지 W 부시 대통령(가운데). <위키피디아>
하지만 장기 집권에 따른 피로감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민주당 내부에서 “펠로시는 이제 내려와야 할 때”라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습니다. 그녀 역시 2016년 정계 은퇴를 고려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오히려 전투력을 불사르는 계기가 됐습니다. 펠로시 의장은 트럼프 당선 후 먼저 축하 전화를 걸어 “곧 있을 의회 여성코커스(CCWI)에 참석해 달라”는 요청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트럼프 대통령은 “잠깐 기다려봐, 딸 바꿔줄게”하더니 이방카에게 전화를 넘겼다고 합니다. 펠로시 의장은 “대통령은 여성 비하적이고, 경력이라고는 트럼프 기업에서 일했던 것이 전부였던 대통령의 35세 딸이 한바탕 늘어놓는 보육정책의 방향에 대해 들어야 했다. 아직은 그만둬야 할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합니다.

미국인들의 뇌리에 뚜렷하게 남은 정치 명장면이 있습니다. 2018년 12월 백악관 집무실을 걸어 내려오는 펠로시 의장의 모습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민주당 지도부에게 미국-멕시코 국경장벽 설치 법안 통과를 종용하기 위해 마련한 자리였지만 1시간도 안 돼 이를 박차고 나오는 길이었죠. 당당한 발걸음, 얼굴의 미소, 멋진 패션 등과 어우러져 “펠로시표 정치의 정수를 보여줬다”는 평을 들었습니다. 트럼프 행정부 초기였다면 대통령 면전에서 퇴장하는 배짱을 보이는 것이 힘들었겠지만, 직전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하원 다수당 확보에 성공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진정한 대적 상대가 될 수 있었습니다. 이 사건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미친 낸시”라는 별명을 붙였습니다.

2018년 12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초대를 받고 백악관 집무실에서 회동한지 1시간도 안 돼 퇴장한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오른쪽)과 찰스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왼쪽). 회담을 결렬시킨 장본인답지 않게 환한 미소와 경쾌한 발걸음 등이 화제가 됐다. <USA투데이>
“갑옷을 입어라. 격투용 너클을 손마디에 끼워라. 아침식사로 손톱을 먹어라(‘정신을 집중하라’는 의미의 속담). 이제 출정하라. 부모의 품에서 아이들을 뺏고, 아이들의 입에서 음식을 뺏는 적들을 물리쳐라.”

펠로시 의장은 전기 출간을 위한 인터뷰를 중세 전쟁 영웅들의 무용담 구절로 마무리했다고 합니다. 80대 할머니의 승부사 기질이 여실히 드러나죠. 물론 정치 서열상 더 높은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탄생했지만 온전히 자기의 결단성과 추진력으로 현재의 위치를 얻은 펠로시 의장과는 비교하기 힘들죠. 아무래도 펠로시를 능가하는 여성 리더가 나오려면 좀 더 기다려야 할 듯 합니다.

정미경 기자mickey@donga.com
#정미경 기자의 청와대와 백악관 사이#정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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