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으로만 따지는 트럼프식 계산법… 기존 질서 모두 무너뜨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2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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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로 보는 혼돈의 2019] <2> 질서 파괴자 (Disruptor-in-chief)


미국의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은 각각 2000년과 1978년에 워싱턴 인근의 대통령 별장 ‘캠프 데이비드’에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 조정에 나섰다. 20세기 초 시어도어 루스벨트 전 대통령도 뉴햄프셔주 포츠머스에서 일본과 러시아의 강화 조약을 주선한 공로로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이처럼 미국 대통령은 각종 국제 분쟁을 중재하고 전 세계의 자유주의와 민주주의 확립에 기여하면서 막대한 영향력과 권위를 얻어 왔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뭔가 달랐다. 이런 기존 질서를 지키기는커녕 오히려 무너뜨리는 데 집중하고 있다. ‘세계의 경찰’ 노릇을 하려면 돈이 많이 들고 다자무역, 환경, 동맹 등의 가치가 미 경제와 자신의 재선에도 이롭지 않다고 주장한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이달 3일 이런 트럼프 대통령을 ‘최고의 질서 파괴자(Disruptor-in-chief)’라고 비판했다. 미 대통령을 지칭하는 또 다른 용어인 군 통수권자(Commander-in-chief)를 변형한 말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를 비롯한 동맹 경시, 파리기후협약, 이란 핵합의, 중거리핵전력조약(INF) 탈퇴, 시리아 철군, 관세 전쟁 등에서 기존 질서 파괴가 뚜렷하다고 비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왜 미국 주도의 세계 평화를 뜻하는 ‘팍스 아메리카나’의 주역 자리를 스스로 내팽개칠까.

첫째도 둘째도 이유는 ‘돈’이다. 그는 시리아 철군 때 “돈이 많이 든다”고 했다. 한국, 일본, 나토 회권국에 대해서는 “잘사는 동맹이 적보다 미국을 더 벗겨 먹는다”는 원색적 비난도 가했다. 단순히 미국인의 세금 낭비를 싫어하는 수준이 아니라 자신의 사업에도 대통령직을 이용한다는 비판이 적지 않을 정도다. 2008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뉴욕대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이 시리아 쿠르드족을 배신하고 터키 편에 선 이유는 터키에 그의 사업이 많기 때문”이라고 꼬집기도 했다.

그는 거센 이해상충 비판에도 미국이 개최하는 주요 행사의 장소로 자신이 소유한 부동산을 고른다. 그는 취임 초인 2017년 2월과 같은 해 4월에 플로리다의 별장 마러라고 리조트에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 및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만났다. 올해 9월 아일랜드를 찾은 마이크 펜스 부통령도 아일랜드 정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수도 더블린에서 무려 300km 떨어진 트럼프 소유의 둔버그 골프링크스&호텔에서 묵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내년 6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를 플로리다의 도럴 골프리조트에서 열겠다고 밝혔다가 거센 비난이 나오자 철회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2년 1억5000만 달러(약 1793억 원)를 들여 파산 직전의 도럴 리조트를 매입했지만 수익성 악화로 고전하고 있다. 이에 “망해 가는 자신의 호텔을 살리기 위해 정부 행사를 개최한다”는 비판까지 나왔다. 가디언은 “트럼프 대통령이 사적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미국의 대외 정책을 경매에 부쳤다”고 비판했다. AP통신도 “미 외교안보 정책의 상당수 사안이 동맹과 친구를 좌절하게 만들고, 적과 동지를 헛갈리게 한다”고 가세했다.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의 기존 질서 파괴가 동맹국의 반발을 불러 국제 질서에 영향을 미치고, 결과적으로 미국의 국익에도 악영향을 끼친다는 데 있다. 대표적인 예가 지지부진한 ‘호르무즈 연합군’ 구성이다. 미국은 올해 상반기 이란과의 갈등으로 호르무즈 해협에서 서방 유조선이 자주 공격을 받자 우방국에 항로 보호를 위한 군대 파견을 요청했다. 하지만 일본 독일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등 핵심 우방국 대부분이 사실상 거절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동맹을 배반한 미국을 따를 나라는 없다. 미국의 몰락을 앞당길 것”이라고 지적했다. LA타임스는 “동맹의 미국 출구전략이 본격화했다”고 진단했다.

조유라 jyr0101@donga.com·이윤태 기자
#미국#트럼프#질서 파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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