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슘 기준치만 신경썼던 日의 패착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4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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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방사성물질 없다는 근거 대라”는 WTO 요구에 답변 못해
“원전사고로 세슘外 다른 핵물질도 수산물서 검출 가능” 한국주장 먹혀

“수산물에서 발견되는 세슘 외에 다른 방사성물질이 나오지 않는다는 근거가 있나.”(세계무역기구·WTO 상소기구)

“….”(일본)

일본 후쿠시마 주변 수산물 수입 규제에 대한 WTO 상소기구의 한국 승소 판정은 우리 정부로서도 예상치 못했던 ‘반전’이다. 이번 역전 판정은 일본이 수산물에서 방사성물질 세슘과 다른 17개 방사성물질의 연관성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12일 산업통상자원부와 해양수산부 등 관계부처에 따르면 WTO 1심과 2심의 판정이 달라진 가장 큰 이유는 후쿠시마 수산물의 방사능 오염도를 판단하는 기준이다. 일본은 생선 등 수산물 자체에서 검출되는 방사성물질 양이 기준치를 밑돈다면 수입을 금지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1심은 이를 받아들였다. 한국이 다른 나라의 수산물은 수입하면서 동일 상품인 일본 수산물만 규제하는 건 WTO 협정 위반이라는 취지였다.

이번 2심은 일본의 특별한 환경을 고려한 한국의 조치가 합당하다고 봤다. 원전 사고로 방사능 오염수가 바다로 흘러들어간 사실이 확인된 이상 수입을 규제할 때 이를 참고해야 한다는 판단이다.

일본이 수산물에서 검출되는 세슘과 다른 17개 방사성물질의 연관성을 충분히 파악하지 못한 점도 승소의 원인이다. 한국 정부는 수산물에서 세슘이 발견된다면 다른 방사성물질이 검출될 가능성도 있다고 강조했다. 방사능 오염수가 바다로 흘러들어갔다면 세슘뿐 아니라 다른 방사성물질에 노출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일본은 세슘과 스트론튬, 플루토늄 등 여타 방사성물질의 상관관계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현재 국제사회는 방사능 오염을 측정할 때 가장 관측이 쉬운 세슘을 기준으로 위해성을 판단한다. 한국 정부는 이 점을 파고들어 다른 위험 요인을 지적한 것이다.

정해관 산업부 신통상질서협력관은 “WTO가 후쿠시마 인근 수산물의 유해성을 판단한 게 아니라 한국의 수입 규제 조치가 절차적으로 합당한지 판단해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1심 결과가 뒤집힐 거라고 예상하지 못한 일본은 비상이 걸렸다. 일본 언론은 WTO 판정 결과를 속보로 알리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고노 다로(河野太郞) 일본 외상은 이날 오전 9시경 이임 인사차 외무성을 방문한 이수훈 주일 한국대사에게 “한국 정부가 일본산 수산물 수입 규제를 완화해 줬으면 한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미야기현 어업협회 관계자는 “(후쿠시마 원전을 운영하는) 도쿄전력 보상으로 어떻게든 지금까지 버텨 왔는데 내년이면 보상이 끊어져 폐업하는 어민들이 속출할 것”이라고 아사히신문에 말했다.

국내 어업계는 승소 소식을 환영하고 있다. 수협중앙회 관계자는 “일본 수산물 수입 재개로 수산물 소비를 불안해하는 사람이 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이번 판정으로 어민과 상인들이 안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세종=송충현 balgun@donga.com / 조윤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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