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골주의와 손잡은 르펜, 대선판 뒤집기 깜짝카드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5월 1일 03시 00분


코멘트

공화당 출신 뒤퐁에냥 총리임명 공약
佛대선 결선투표 1주일 앞두고 ‘견원지간’ 드골주의와 연대 선언
2002년과 다른 대선구도 연출… ‘극우저지’ 전략적 투표론 깨질수도

프랑스 극우 정당 국민전선(FN)의 대선 후보 마린 르펜이 결선투표에서 에마뉘엘 마크롱이라는 높은 벽을 넘기 위해 ‘드골주의자’이자 우파 공화당 출신인 공화국세우기당 대표 니콜라 뒤퐁에냥과 전격적으로 손을 잡았다.

르펜과 뒤퐁에냥은 지난달 29일 파리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우리는 프랑스를 사랑하는 국민의 선택을 받는 공동 정부를 세울 것”이라며 “애국자들의 승리를 위한 공동 프로젝트를 공개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르펜은 이날 자신이 대통령에 당선될 경우 뒤퐁에냥을 총리로 임명하겠다고 밝혔다.

7일 결선 투표를 일주일 앞두고 나온 르펜의 깜짝 승부수가 프랑스 정치판에 큰 파문을 몰고 오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FN이 다른 정당과 공식 연대를 성사시킨 것은 처음 있는 일로, 이는 더 이상 FN이 ‘악마로 묘사되는 당’이 아니라는 걸 보여 주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뒤퐁에냥은 지난달 23일 1차 투표에서 4.7%로 사회당 브누아 아몽과 1.7%포인트 차밖에 나지 않는 6위를 차지할 정도로 만만찮은 득표력을 자랑한다. 그는 공화당의 전신인 공화국연합(RPR)과 대중운동연합(UMP)에 소속됐던 주류 정치인으로 지금도 공화당 의원들과 교류가 많다.

공화당은 곧바로 “뒤퐁에냥이 진정한 민낯을 드러냈다. 배신의 얼굴”이라는 비판 성명을 발표했지만 내심 당황하는 분위기다. 전통적 보수주의자인 뒤퐁에냥의 르펜 지지는 ‘극우 집권을 막기 위해 마크롱을 찍자’는 전략적 투표론에 균열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극좌 후보로 4위를 차지했던 장뤼크 멜랑숑이 어느 후보도 지지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힌 데 이어 뒤퐁에냥의 합류로 르펜 저지를 위해 모든 주류 정치 세력이 뭉쳤던 2002년 대선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1차 투표가 끝난 후 일주일 동안 르펜은 지지율이 5%가량 오르며 상승세를 타고 있다.

뒤퐁에냥은 정치 입문 전인 20대부터 지금까지 열렬한 ‘강성 드골주의자’다. 샤를 드골 초대 대통령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와 최전선에서 싸운 ‘전쟁 영웅’으로 민족주의를 앞세워 가파른 경제 성장을 이끌었다. 10%의 높은 실업률과 유럽 패권에서 독일에 밀리는 위기감 속에서 이번 대선 출마자 11명은 모두 드골 전 대통령을 최소 한 번씩 언급할 정도로 각광받고 있다.

드골주의자의 르펜 지지는 늘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르펜의 친(親)나치 이미지를 희석시키는 데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50만 명에 달하는 프랑스 내 유대인은 마크롱을 지지하고 있다. FN이 알제리의 독립을 승인한 드골에게 강하게 반대하면서 태어난 정당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아이러니라는 평가도 나온다. 또한 친나치 이미지를 만든 아버지 장마리 르펜과 각을 세우기 위한 조치로도 보인다.

뒤퐁에냥은 2012년 대선 출마 때부터 프랑스의 실업과 가난의 주원인으로 유로화를 지목하며 화폐 단위를 프랑으로 바꿔야 한다는 공약을 내건 반(反)EU주의자다. 이번 대선에선 당장 EU 탈퇴보다는 프랑스의 국경, 예산, 법을 회복하는 방식으로 EU와 재협상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르펜과 뒤퐁에냥은 29일 “유로존 탈퇴가 모든 경제 정책의 선결 조건은 아니다. 경제 프로그램의 수정도 가능하다”며 한발 물러섰다.

파리=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
#극우#르펜#마크롱#드골주의자#공화당#뒤퐁에냥#대선#프랑스#친나치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