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최영해]샌더스가 사회주의자라고?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2월 17일 03시 00분


최영해 국제부장
최영해 국제부장
버니 샌더스는 스스로 ‘사회주의자(socialist)’라고 부른다. 앞에 민주적(democratic)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지만 방점은 사회주의자에 있다. 주립대학 학비를 공짜로 하고 모든 국민에게 무료 건강보험을 약속했다. 자본주의 본산 미국을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 같은 북유럽 복지국가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스칸디나비아 반도가 샌더스의 이상향이다.

샌더스에 젊은이들이 열광하는 것은 대학 공짜, 건강보험 공짜라는 것 때문이다. 한 해 유명 사립대 학비가 6만 달러를 넘고 주립대도 타 주 학생들에겐 사립대 버금갈 정도로 비싸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대학 때 빚을 져 변호사 생활을 하면서 두고두고 갚았을 정도니 미국 대학 등록금이 얼마나 살인적인지 가늠할 수 있다. 유럽에선 대학을 다니면 학교에서 되레 학생에게 돈을 주는 나라가 여럿 있다.

미국에서 보험 없이 응급실에 실려 가면 2000달러, 맹장 수술비 5만 달러, 암 치료비 20만 달러라는 청구서가 날아온다. 대학은 등록금 장사로 돈벌이에 바쁘고 학생은 ‘열정 페이’ 아르바이트를 밤낮으로 해도 빚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근로자 최저임금을 7.5달러에서 15달러로 곱절로 올리겠다니 ‘임금 노예(wage slaves)’들은 누가 싫어하겠나.

공약 이행을 위한 샌더스의 돈줄(18조 달러·약 2경1600조 원)을 보면 서민들의 속을 시원하게 뚫어준다. 국가예산의 15%나 차지하는 국방비 지출을 줄이고 부자에게 부유세를 매기며 탐욕스러운 월스트리트에서 세금을 많이 때리자고 한다. 덩치가 너무 커서 죽일 수 없는 것(too big to fail)은 아예 탄생되지 말도록 하는 법(Too Big to Exist Act)을 만들자고 하는 대목에선 유세장에서 박수가 절로 터진다. “돈 많은 사람 좀 뜯어먹자”는 공약에 상위 1%를 제외한 99%는 열광한다. 2011년 9월 월스트리트를 휩쓴 ‘Occupy Wall Street(월가를 점령하라)’ 구호가 5년 뒤 정치판에서 새 역사를 쓸지 흥미진진하다.

샌더스는 어렸을 적부터 정치혁명을 꿈꿨다. 점진적인 개혁이 아니라 지금의 판을 완전히 뒤집자는 것이다. 대학생들은 양떼처럼 그를 따라 몰려다닌다. 공짜여서 행복하고 희망을 봤다는 표정이다. 소액기부도 덩달아 늘고 있다.

‘사람을 위한 사회’의 핵심은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것 같지만 샌더스는 사회주의자는 아니다. 오히려 ‘사회적 민주주의자(social democrat)’에 가깝다.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변화와 개혁을 도모하는 것이지 사회혁명과는 거리가 있다. 부자와 월스트리트를 겨냥하고 있지만 제도적 테두리 안에서 변화를 꿈꾼다. 이상향 스칸디나비아 제국도 사회주의 국가가 아니라 사회 민주주의 국가다. 마르크스와 레닌이 샌더스 공약을 보면 웃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럼에도 샌더스가 선거 캠페인을 하면서 자칭 민주적 사회주의자라고 외치고, 인터넷 홍보영상에서도 ‘socialist’라고 연거푸 강조하는 것은 왜일까. 선전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선거 전략이다. 그가 승리하면 큰 변화가 몰아닥칠 것이라는 것을 예고하는 홍보 전술이다. 스스로 “나는 사회주의자”라고 샌더스는 수십 년 동안 말해왔다. 그래서 기성 정치에 몸담지 않고 무소속으로 남아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유대인 민주주의자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 사회는 급속도로 진보 쪽으로 옮아가고 있다. 운이 좋아선지 아니면 때를 잘 만나서인지 모르겠지만 샌더스는 시대정신을 제대로 읽고 있다. “Enough is enough(계속 이대로 둘 수 없다)” “Feel the Bern(버니를 느껴 봐)” 유세장에 넘치는 구호가 ‘대통령 재수생’ 힐러리 클린턴을 위협하고 있다.

최영해 국제부장 yhchoi65@donga.com
#샌더스#사회주의자#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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