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일본 나가사키·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으로 피해를 입은 이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첫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패소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6부(부장판사 윤강열)는 26일 “국가가 원폭 피해자들의 배상청구권과 관련해 외교적 교섭 노력을 하고 있는 이상 현 단계에서 조치가 충분치 못하다는 사정만으로는 불법행위가 성립한다고 보기 어렵다”며 원폭 피해자 79명의 손해배상 청구를 기각했다. 헌법재판소는 2011년 국가가 원폭 피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일 청구권 협정의 분쟁 해결 방식에 따라 외교적 노력을 다 하지 않는 ‘부작위’는 위헌이라고 결정을 내렸다. 이에 피해자들은 “정부가 중재 절차에 따른 해결을 위해 중재요청 공한을 보내야 함에도 양자협의만을 요구하는 등 미온적인 대응만 하고 있다”며 “분쟁해결절차로 나아갈 의무를 다하지 않는 국가의 행위는 불법에 해당하고, 이로 인해 정신적 고통을 받고 있다”며 위자료를 1인당 100만 원 씩 합계 7억 9000만 원의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한·일 청구권 협정은 외교상 경로를 통한 분쟁 해결을 우선하고 있으며 한-일 간에는 원폭 피해자 문제 외에도 일본군 위안부와 강제징용 피해자 문제 등 외교적 현안이 산적해 있다”며 “양자 협의 제안 요구에 일본이 명시적인 대응을 보이지 않는다는 사정만으로 한국 정부가 중재 절차 회부의 의무를 부담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헌재의 위헌 결정에 대해서도 “국가의 부작위가 위헌이라는 것이지, 곧바로 중재 회부를 통한 분쟁 해결 의무가 있다고 선언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판시했다.
이어 “국가의 조치는 고령인데다 피폭으로 인한 후유증에 시달리는 원고들의 피해 구제의 절박성과 시급성에 비춰 충분한 것이라고 보긴 어렵지만, 중재 회부는 2차적인 수단인 점과 외교관계의 특수성을 고려하면 정부의 조치가 충분치 못하다는 사정만으로 국가가 의무를 위반해 불법행위가 성립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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