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금기 깨고 ‘콘돔 허용 가능성’… 교황, 첫 공개언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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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1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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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즈 예방한다면 더 인간적인 길로 나아가…”

교황 베네딕토 16세(사진)가 로마 가톨릭 교회의 금기를 깨고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콘돔 사용을 허용할 수 있다”는 견해를 보여 주목된다. 가톨릭은 생명 존중 사상 때문에 낙태 수술은 물론이고 피임을 위한 콘돔 사용도 반대한다.

베네딕토 16세는 곧 자신에 관해 출판될 책에서 ‘바티칸이 에이즈 감염 위험이 높은 아프리카에까지 콘돔 사용을 금하는 것은 문제 아니냐’는 저자의 질문에 “콘돔 사용이 현실적이고 도덕적인 해법이라고 보지는 않지만 (에이즈) 감염 위험을 줄이기 위한 것이라면 (콘돔 사용이) 더 인간적인 길로 나아가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교황의 발언은 독일 언론인 페터 제발트 씨가 7월에 6일간에 걸쳐 20시간 동안 인터뷰한 내용을 담아 23일 출간 예정인 책 ‘세상의 빛’에 담겨 있다.

미국 뉴욕교구의 고(故) 존 오코너 추기경을 비롯해 과거 가톨릭교회 내에서도 일부 지도급 인사가 에이즈 확산을 막기 위해 제한적으로 콘돔을 허용하는 문제를 거론한 바 있으나 교황이 공개적으로 언급하기는 처음이다. 베네딕토 16세는 지난해 3월 “콘돔 사용이 에이즈 확산을 (오히려) 심화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가 국제적 논란을 일으켰을 정도로 강경론자였다. 교황의 이번 발언으로 벌써부터 가톨릭 내부에서는 “콘돔 사용을 정당화한 것”이라는 찬성론자와 “생명을 살리기 위한 예외적 인정을 언급한 것일 뿐”이라는 반대론자 간의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고 외신이 전했다. 인권단체는 일단 환영의 태도를 보였다.

또 ‘세상의 빛’에는 최근 국제적인 이슈가 된 사안들에 대한 견해도 실렸다. 우선 프랑스가 이슬람 여성의 부르카 착용을 금지한 것에 대해 “기독교인은 관용적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자아를 인정해 줘야 한다”고 반대 의사를 밝혔다. 또 “(나의 고국인) 독일에서 신부의 성추행이 그렇게 많은 것을 알고 상당히 놀랐다”고도 했다.

한편 교황은 “집에서는 저녁에 참모들이나 집을 돌보아주는 4명의 여신도와 함께 TV 뉴스나 쇼 보기를 즐긴다”며 “교황이라는 직책은 종신직이긴 하지만 영적으로 육체적으로 일하기 어려운 정도가 되면 사퇴할 의무와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파리=이종훈 특파원 taylor5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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