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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10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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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전자 등 수출기업 타격 속 해외여행 업계 미소
일본 엔화 가치가 나홀로 고공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투자자들은 엔화를 사기 위해 줄을 서는 양상이다.
10일 기준으로 유로화 가치는 올해 들어 달러화에 비해 6.7% 하락했고 영국 파운드화는 13.9%, 호주 달러는 22.0%, 태국 밧화는 12.8% 떨어졌다.
그런데 엔화 가치는 올해 들어 달러화 대비 한때 14.1%까지 오르는 등 초강세를 나타내고 있다. 지난해 말에 엔-달러 환율은 달러당 113엔대까지 기록했지만 지난주 한때 97엔대까지 떨어졌다.
엔화 강세는 글로벌 금융위기의 한파 속에서 엔화가 미국 달러화만큼이나 안전 자산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연 0.5%라는 세계 최저 수준의 저금리를 활용해 엔화를 빌려 고수익 외화 자산에 투자하던 엔 캐리 트레이드가 청산되면서 이제는 일본 국내 외환시장에서 엔화에 대한 수요가 급격히 늘어난 것도 엔화 가치 상승을 불러온 한 원인이다.
스코틀랜드왕립은행(RBS)의 외환 전략가인 마사후미 야마모토 씨는 12일 AFP통신에 “엔화 가치 상승 압력은 연말까지는 계속될 것”이라며 “일본 정부의 대책이 먹혀들지 않으면 달러당 95엔까지 갈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그러나 일본으로선 엔화가 국제사회에서 높은 대우를 받고 있다고 마냥 즐거워할 일은 아니다.
엔화 가치 상승으로 자동차 전자 등 수출 기업들은 직격탄을 맞았다. 해외에서 일본 제품의 가격이 올라 수출 기업의 경쟁력이 떨어지고, 이는 기업의 주가를 끌어내리는 악순환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 일본 대표 기업인 도요타자동차는 엔화 가치가 달러당 1엔 올라가면 3억5000만 달러를 손해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도요타자동차, 소니, 파나소닉 등의 주가가 큰 폭으로 떨어지면서 닛케이평균주가의 하락을 선도했다. 지난주 일본 닛케이평균주가는 24%나 폭락했다. 이는 50년 역사상 최악의 성적표. 이러다 보니 일본 경제도 이제 침체에 들어섰다는 분석마저 나오는 형편이다.
일본 내 공항과 면세점 등도 울상이다. 엔화 가치 급등으로 일본을 찾는 외국인이 여간해서는 지갑을 열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외국인 관광객에게 면세 혜택을 주고 있는 도쿄 아키하바라(秋葉原) 전자상가는 지난주부터 손님이 눈에 띄게 줄었다고 아사히신문이 12일 보도했다.
이곳 전자제품 매장의 한 매니저는 “지난주부터 손님이 30% 정도 줄었다. 구경만 하고 물건을 사지 않는 손님이 늘었다”고 전했다. 한 대형 전자제품 할인점 사장은 “최근 몇 년간은 유로화가 비싸서 유럽인들이 여기 와서 돈을 썼는데 앞으로 유럽 관광객들이 줄까 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나리타(成田), 간사이(關西) 공항 등에 있는 면세점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늘이 있으면 어딘가엔 반드시 빛도 있는 법. 외국 여행을 떠나는 일본인에게는 엔화 가치 상승이 여간 반가운 게 아니다.
후쿠오카(福岡) 시 하카타(博多) 항 국제터미널은 고속 페리로 부산으로 떠나려는 관광객들로 아침 일찍부터 붐비고 있다고 아사히신문이 전했다. 터미널 내 은행 창구에는 엔화를 원화로 바꾸려는 사람들의 행렬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은행 측이 ‘1인당 10만 엔’으로 환전 한도까지 정할 정도. 한국 원에 대한 엔화 가치가 한두 달 전 100엔당 900원대에서 지난주 한때 1400원을 넘어서면서 벌어지는 양상이다.
엔고 현상이 계속 이어지면 관련 업계의 희비 또한 더욱 극명하게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윤종구 기자 jkma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