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러, 이미 선택한 길로 가야한다”

  • 동아일보
  • 입력 2008년 5월 8일 03시 02분



‘푸틴의 그림자’… 당분간 수렴청정 예상

드미트리 메드베데프(43) 전 러시아 제1부총리가 7일 러시아의 세 번째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소련이 무너지고 러시아연방이 출범한 이후 전임 대통령이 임기를 채우고 후임자에게 자리를 내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세계에서 가장 큰 영토와 자원, 미국 다음의 군사력을 보유한 러시아를 이끌 젊은 대통령 메드베데프의 청사진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첫해는 푸틴의 수렴청정’ 관측=7일 모스크바 크렘린에서 열린 취임식에서는 메드베데프 신임 대통령이 전임자 블라디미르 푸틴 전 대통령을 ‘대접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메드베데프 대통령이 전날 이미 ‘대통령 신분증’을 받았지만 푸틴 전 대통령은 7일 오전 11시 반까지 대통령 집무실에 머물다가 행사장인 안드레예프스키홀로 직행했다.
푸틴 전 대통령은 메드베데프 대통령이 취임 선서를 하기 전 단상에서 “러시아는 이미 선택한 경로로 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연설하며 새 대통령이 자신의 노선을 계승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1991년부터 푸틴 전 대통령을 그림자처럼 따라 다녔던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푸틴 전 대통령의 개인적 지원에 감사하며 앞으로도 그가 나를 도울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이런 모습에 비춰 메드베데프 대통령이 최소한 취임 첫해에는 총리실로 자리를 옮기는 푸틴 전 대통령의 수렴청정을 받을 것이라는 예상이 유력하다.
푸틴 전 대통령도 크렘린을 떠나기 전 곳곳에 이런 계산에 따른 포석을 깔아놓았다. 지난해 총선에서 개헌 정족수(두마 의석의 3분의 2)를 돌파한 집권여당 통합러시아당의 대표직을 수락했고 새로운 총리가 지역 전권대표(주지사와 별도로 대통령령으로 러시아 5대 지역에 보내는 지역 대표)를 지휘하도록 해 총리의 위상도 높여 놓았다.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3월 2일 당선자 신분이 된 뒤 사회 경제 분야의 ‘개혁’을 강조해왔다. 러시아 경제의 지나친 자원수출 의존, 개발도상국에서 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한 노동생산성, 열악한 복지 수준을 뜯어고쳐 보겠다는 포부를 펼쳐 보였다.
하지만 메드베데프 대통령의 ‘개혁’은 푸틴 전 대통령이 국정 지표로 삼은 ‘안정’을 해칠 정도로는 확대되지 않을 것이라고 러시아 전문가들은 관측했다. 전임 대통령이 남겨놓은 내각과 대통령행정실에 대한 인사 폭도 최소한에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신구 세대 갈등 전망도=메드베데프 대통령이 당분간 평탄한 길을 갈 것이라는 대부분의 예상과 달리 ‘가는 곳마다 복병을 만날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국정 경험이 상대적으로 빈약한 젊은 세대인 데다 신임 대통령과 ‘실세’ 총리가 이끄는 양두체제 자체가 러시아 역사상 초유의 실험이기 때문이다.
특히 정계 기반이 허약한 메드베데프 대통령이 초(超)대통령제 국가인 러시아에서 대통령 고유 권한을 발동할 경우 푸틴 전 대통령의 지휘를 받았던 크렘린 구파와 충돌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동유럽 미사일방어(MD) 체제, 무기 감축 협정 등으로 꼬인 미국 및 유럽과의 관계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지도 취임 초기 메드베데프 대통령의 주요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모스크바=정위용 특파원 viyonz@donga.com

:메드베데프 대통령 약력
△1965년 9월 14일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 출생 △1987년 레닌그라드대(현 상트페테르부르크대) 법학부 졸업 △1990년 상트페테르부르크대 법학 박사 △1990∼1995년 상트페테르부르크 시 대외관계위원회 자문관 △1991∼1996년 상트페테르부르크대 민법학 강사 △1999년 총리실 부실장 △1999∼2000년 대통령행정실 부실장 △2000∼2003년 9월 러시아연방 대통령행정실 제1부실장 △2000년 국영 가스회사 가스프롬 이사회 이사장, 2001년 가스프롬 이사회 부이사장, 2002년 6월∼현재 가스프롬 이사회 이사장 △2003년 10월 대통령행정실 실장 △2005년 10월 제1부총리 △2008년 3월 2일 여당 후보로 대선 승리 △2008년 5월 7일 러시아연방 대통령 취임

▼동북아 가스수출량 늘려 한반도에 영향력 높일듯▼
메드베데프 실리외교와 한러관계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신임 러시아 대통령 시대의 러시아는 최대한 실리를 추구하면서 한반도에 대해 영향력을 높여 나가려 할 것으로 전망된다.
러시아 최대 국영기업인 가스프롬 회장으로 재직할 당시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한국에 사할린 천연가스를 공급하는 계약에 서명했다. 올해부터 공급되는 이 가스는 한국 연간 천연가스 소비량의 6%에 이른다.
메드베데프 대통령의 측근 인사들은 “새 대통령이 남북한을 포함한 동북아 국가들과 관계를 확대할 가능성이 크다”고 점치고 있다.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첫 해외 순방 국가도 아시아로 잡았다. 다음 주 이웃 국가인 카자흐스탄과 중국을 방문한 뒤 7월에는 주요 8개국(G8) 정상회담에 참석하기 위해 일본으로 향한다. 가스프롬은 새 대통령 취임을 앞두고 “동북아 국가로 수출되는 러시아 가스를 현재 수출량의 3%에서 앞으로는 30%로 늘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바실리 미헤예프 러시아 세계경제 및 국제관계연구소(IMEMO) 동북아연구센터 소장은 “올해 열릴 이명박 한국 대통령과 메드베데프 대통령의 정상회담에서 양국이 교류와 협력의 접점을 대폭 넓힐 가능성이 크다”고 예상했다.
전문가들은 특히 메드베데프 대통령이 남북한 등거리 외교 기조를 바꿀 것인지에 큰 관심을 나타냈다. 러시아는 보리스 옐친 전 대통령 당시 한국과 가깝게 지내다가 블라디미르 푸틴 전 대통령 때부터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정상회담을 열며 등거리 정책으로 돌아섰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메드베데프 대통령이 푸틴 정부의 대북정책을 그대로 이어 갈 가능성이 큰 것으로 예상한다. 그러나 모스크바의 일부 전문가는 “러시아와 남북한의 교역 규모 및 메드베데프 대통령의 실리 정책으로 볼 때 그가 한반도 정책을 바꿀 가능성은 충분히 크다”고 내다봤다.
모스크바=정위용 특파원 viyon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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