政財界서 스포츠까지…美 주류사회 속속 진입

  • 입력 2007년 10월 27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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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주류 사회에 속속 진출한 한인 교포들은 정치분야로도 관심의 폭을 넓히고 있다. 한인들이 8월 뉴욕 유엔본부 앞에서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무장세력에 납치된 한국인들의 석방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뉴욕=연합뉴스
미국 주류 사회에 속속 진출한 한인 교포들은 정치분야로도 관심의 폭을 넓히고 있다. 한인들이 8월 뉴욕 유엔본부 앞에서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무장세력에 납치된 한국인들의 석방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뉴욕=연합뉴스
미국의 기혼 여성을 대상으로 한 ‘미즈 아메리카’ 대회가 20일 캘리포니아 주 글렌데일에서 열렸다.

미 전역에서 예선을 거쳐 올라온 33명 중 최고 미인의 영광은 올해 31세의 제인 박 스미스 씨가 차지했다. 박 씨는 2세 때 미국으로 온 한인 1.5세.

심사위원단은 “박 씨는 태권도 2단에 영화배우와 모델, 방송기자로 활동해 온 다재다능한 여성이며 카트리나 재해 돕기, 케냐 고아 돕기 등 봉사활동에도 적극적”이라고 평가했다.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를 졸업한 박 씨는 모델과 배우, MC 등 다양한 부문에서 활약했다.

‘타고난 지력과 외모, 다양한 경력과 활발한 봉사활동…’이란 표현은 요즘 미국의 각 분야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한인 2세와 1.5세들에게 자주 따라붙는 수사(修辭)다.

고학력의 학벌과 좋은 직장을 포기한 채 자식 교육을 위해 미국으로 건너온 1세대는 온갖 고생을 하면서 자식들을 헌신적으로 교육시켰다. 그러면서도 공부벌레만으로 키우지는 않았다. 이제 그 열매가 무성하게 맺히고 있는 것이다.

한인 2세들의 성공 스토리는 거의 모든 분야에서 들려온다. 이민 1세대가 뉴스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성공 스토리는 정치 경제 학계에 집중됐지만 이제 예술 예능 스포츠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미국 사회의 조명을 받는 한인 2세와 1.5세들을 만날 수 있다.

▽대중의 사랑을 한 몸에=한국에서 ‘미드(미국 드라마)’ 열풍을 몰고 온 미국 TV의 각종 드라마를 보면 한국계 배우들을 매일 만나게 된다. 언어와 문화의 장벽이 없는 이들은 동양인으로서 외모의 매력과 희소성, 연기력을 무기로 미 연예계에서 경쟁력을 과시하고 있다.

현재 찰리 리(‘척’), 제임스 카이슨 리(‘히어로즈’), 문 블러드굿(‘저니맨’), 윌 윤 리(‘바이오닉 우먼’), 샌드라 오, 조이 오스만스키(‘그레이 아나토미’) 씨 등 한국계 배우 6명이 5편의 미드에 고정 출연하고 있다.

TV 앵커로 활약하는 한국계 여성도 많다. CNN 전국 네트워크 ‘헤드라인 뉴스’의 앵커 소피아 최, ABC 뉴스 ‘20/20’의 공동 진행자 주주 장, 2003년 에미상 최우수 보도 부문에 올랐던 NBC 뉴스 프로듀서 낸시 한 씨 등은 미국 TV에서 낯익은 얼굴이다.

▽정계와 관계의 ‘핵심 실무진’으로=백악관, 국무부 등 행정부의 주요 부서에도 한인 2세 간부가 포진해 있다. 백악관 입법보좌관인 헤럴드 김(37) 변호사는 라스베이거스에서 태어난 2세로 상원 법사위원회에서 일하다 발탁됐다.

한반도 관련 정책은 대부분 한인 2세 실무 간부들이 주무른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의 빅터 차 동아시아 담당 보좌관은 5월에 조지타운대로 복귀했지만 국무부 한국과의 성 김 과장, 유리 김 북한팀장, 정보분석국의 글렌 백 씨 등 한국계가 많다.

국방부 본부는 물론 일선 지휘관에도 한인 2세가 많다. 올해 미 육군사관학교(웨스트포인트)를 졸업하고 소위로 임관한 978명 가운데 35명이 한국계였고 해군사관학교에서도 15명의 한인 2세가 장교로 임관했다.

▽학계와 정보통신, 재계의 주도층으로=올봄 미 하원에서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 문제가 쟁점이 됐을 때 월스트리트저널, 워싱턴포스트 등 유력 신문에는 과거를 반성하지 않는 일본 정부를 규탄하며 하원의 결의안 통과를 촉구하는 유려한 문장의 영문 칼럼이 잇달아 게재됐다.

대부분 미국에서 태어나 교육받은 한인 2세 출신 대학교수들의 글이었다. 이들은 미국인들의 정서를 정확히 파악해 논리적으로 위안부 결의안 통과의 당위성을 설득했다.

명문대학의 종신 교수에 임명되는 2세와 1.5세도 늘고 있다.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은 지난해 말 문영미(44) 교수를 한인 최초의 종신(tenure) 교수로 임명했다. 이 대학 법대에는 석지영(33) 씨가 지난해 최초의 한인 여성 교수로 임명됐다.

실리콘밸리에도 한국계 리더가 많다. 세계 최대 인터넷기업 구글 본사에서 콘텐츠파트너십을 총괄하는 데이비드 은 부사장은 두 살 때 부모를 따라 미국에 온 한인 1.5세다.

인텔 디지털홈그룹의 총괄 책임자인 에릭 김 수석 부사장, 인터넷 가상세계 ‘세컨드 라이프’의 운영사인 미 린든랩 본사 윤진수 부사장 등도 한국계다.

주류 사회 곳곳에 진출한 한인 2세는 아직 30대가 주류다. 10년, 20년이면 각 부문의 명실상부한 지도자 그룹에 한국계가 무수히 등장할 것을 예고하고 있는 셈이다.

최근 뉴욕 일대 한인 2세들의 연례 만찬 모임에는 마이클 블룸버그 시장이 직접 참석하기도 했다. 이들의 ‘힘’을 보여 주는 대목이다. 한인 2세들의 대학 졸업 비율은 61.8%로 백인(33.0%)의 두 배에 이른다.

물론 이들은 엄연한 미국시민이다. 한국말이 서툴거나 거의 하지 못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이들이 부모의 나라 한국에 대해 갖는 감정은 한국 사회에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애틋하고 깊다.

한국에서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미국으로 온 지 15년여 만에 워싱턴 지역에 ‘H.C.PARK&Associate’란 중견 로펌을 설립한 박해찬 변호사는 “아이들이 철들면서 자연스레 부모의 나라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이 깊어지더라”며 “세계화 시대에 지구촌 곳곳의 한인 2세들은 모국의 큰 자산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

김승련 특파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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