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FBI, 시민-환경단체도 무차별 감시

  • 입력 2005년 12월 21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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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다시 에드거 후버 시절로 돌아가고 있는가?”

에드거 후버는 1924년부터 1972년까지 미국 연방수사국(FBI) 국장을 지내며 도청으로 수집한 ‘비밀파일’을 이용해 막강한 권력을 휘두른 인물. 최근 미 정보기관들의 무차별 도청과 감시 사실이 드러나면서 미 시민단체들은 이 같은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최근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국가안보국(NSA)의 영장 없는 도청을 승인한 사실을 폭로한 뉴욕타임스는 20일 FBI의 대테러 요원들이 테러와 직접 관련이 없는 시민운동과 환경보호단체들을 상대로 감시와 정보수집 활동을 벌인 것으로 드러났다고 보도했다.

미국시민자유연맹(ACLU)의 요구로 공개된 한 FBI 자료는 FBI 요원들이 그동안 가톨릭근로자단체의 ‘반(semi) 공산주의 이념’에 대해 언급하고 한 동물보호단체의 집회장소 결정에 대해서도 관심을 보였음을 드러내고 있다.

이번 자료 공개는 ACLU가 150여 개 시민사회단체와 함께 정보공개 소송을 낸 데 따른 것.

FBI는 이전에도 잠재적 무정부주의자나 반전시위자들에 대한 조사에 관심이 있었음을 보여 주는 자료를 공개한 바 있다.

FBI는 “이들 단체가 범죄나 폭력에 연루됐다는 증거에 따른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시민단체들은 “미 행정부가 테러리즘과 합법적 시위 사이의 구분을 무너뜨렸음을 보여 주는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앤 비슨 ACLU 법무담당 부책임자는 “국방부와 NSA, FBI 등 현 행정부의 거의 모든 테러 관련 부처가 미국민을 사찰한 셈”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부시 대통령은 뉴욕타임스의 ‘비밀도청’ 폭로 기사와 관련해 뉴욕타임스 발행인과 편집장을 대통령 집무실로 부르는 등 보도를 필사적으로 막으려 했다고 주간 뉴스위크의 칼럼니스트 조너선 앨터가 19일 지적했다.

그는 ‘부시의 탐정 게이트’란 논평에서 “부시 대통령이 뉴욕타임스 기사를 막기 위해 6일 아서 설즈버거 주니어 발행인과 빌 켈러 편집장을 집무실로 불렀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국가안보와 관련 없는 일에 부시 대통령이 잘못된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특히 부시 대통령이 ‘전시(戰時)에 이처럼 중요한 프로그램을 폭로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주장한 데 대해 “이번 도청 사실 공개는 부끄러운 일이 아니고 오히려 대통령의 권력 장악을 중단시키려는 부시 행정부 내 한 애국자의 작품”이라고 주장했다.

이 같은 비판 여론에도 불구하고 부시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송년 기자회견을 갖고 “미국 시민들을 살해하려는 적의 위협에 직면해 있는 한 안보당국이 영장 없이 비밀도청을 계속하도록 허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철희 기자 klim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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