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만 ‘킬링필드’ 영혼들 분노하다

  • 입력 2005년 11월 8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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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킬링필드’에서 숨져 간 무고한 영혼들은 언제쯤 편히 잠들 수 있을까.

1970년대 중반 캄보디아인 200만 명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크메르루주 좌파 정권의 야만은 끝이 났지만 그 상처는 아직 아물지 않았다. ‘킬링필드’의 주역들은 아직도 대량학살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으며 후세들이 기억해야 할 학살의 기념물들은 자본주의에 떠밀려 자취도 없이 사라지고 있다.

▽“폴 포트는 애국자였다”=크메르루주 정권의 핵심 권력자였던 누온 체아 전 캄보디아 공산당 부서기장은 6일 영국 B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나쁜 사람들만 죽였다”고 말했다.

그는 크메르루주 몰락 후 36년 만에 처음으로 서방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 “우리에게 책임이 있다면 그것은 당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행정적인 책임”이라며 “기아와 학살은 당 내부에 숨어 있는 ‘반역자’들의 소행이었다”고 발뺌했다.

캄보디아 크메르루주 정권 당시 최대 학살 장소였던 체옹에크 기념관에 전시된 해골들. 1992년 설립된 이 기념관을 직접 운영해 왔던 캄보디아 정부는 최근 월 임대료 1만5000달러를 받는 조건으로 관리권을 일본 기업에 넘겼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그는 “‘불순분자 제거’를 통해 완전한 사회주의 혁명을 이루려 했던 폴 포트의 실험은 잘못된 것이 아니었다”면서 ‘폴 포트는 양심적인 애국자’라고 두둔했다

폴 포트 정권에서 2인자로 군림했던 누온 체아는 현존하는 크메르루주 지도자 중 최고위직에 있었던 인물. 그는 유엔 국제전범재판에 대량학살 혐의로 기소돼 있다.

누온 체아 재판은 내년 초 열릴 예정이지만 캄보디아 정부의 비협조 때문에 또다시 연기될 가능성이 높다고 영국 텔레그래프지가 5일 보도했다. 훈센 총리가 이끄는 캄보디아 정부가 크메르루주 잔당의 압력 때문에 자료 제출과 비용 분담 문제에 미온적인 태도로 일관하면서 전범재판은 지난 8년 동안 계속 지연돼 왔다.

▽사라지는 학살 기념물들=대량학살 주모자 책임 규명과 함께 희생자 추모 작업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대량학살의 역사적 장소들이 사라지거나 상업적 관광지로 변모하면서 그 역사적 의미가 퇴색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가 6일 보도했다.

최근 캄보디아 정부는 크메르루주 정권 당시 최대 학살 장소였던 체옹에크 지역의 묘지와 기념관 관리권을 일본 기업에 매각했다.

묘지와 기념관 관리권을 획득한 일본 ‘JR 로열 컴퍼니’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입장료를 0.5달러에서 2달러로 올린 것. 관광객을 늘리기 위해 묘지 구역을 줄이고 기념관을 늘리는 작업에도 착수했다.

이 회사는 앞으로 30년간 캄보디아 정부에 매년 1만5000달러의 임차료를 지불해야 하지만 입장료로만 매달 1만8000달러 이상을 벌어들일 예정이어서 관리권 획득으로 막대한 수입을 올릴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달 한 베트남 기업은 크메르루주 정권 당시 가장 많은 민간인들이 수용됐던 투올슬렝 감옥터를 사들여 관광지로 개발하겠다고 발표했다. 학살 관련 장소는 아니지만 캄보디아 ‘관광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앙코르와트 유적지 운영권도 수년 전 개인 기업으로 넘어갔다.

캄보디아의 인권운동가 케크 갈라브루 씨는 “정부가 킬링필드의 기념물을 닥치는 대로 팔아치우고 있다”면서 “언젠가는 메콩강도 팔아넘길 것”이라고 말했다.

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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