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착륙 美여객기 승객들, 기내서 긴급뉴스 지켜봐

  • 입력 2005년 9월 24일 03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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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인근 공항에서 뉴욕행 여객기를 탄 승객 140명은 기내에서 생중계되는 위성TV를 통해 삶과 죽음의 기로에 선 자신들의 운명을 지켜봐야 했다. 무려 3시간 동안 비행기가 비상착륙하는 모습을 손에 땀을 쥐며 속수무책으로 바라봐야 했던 이들의 심경은 어땠을까.

이날 오후, 승객들은 로스앤젤레스 인근 버뱅크밥호프 공항에서 제트블루 항공사 소속 FLT292 편에 올랐다. 이륙하자마자 조종사는 기체에 심각한 이상을 발견했다. 랜딩기어(이착륙용 바퀴장치)를 접어 넣어야 하는데 앞쪽 바퀴가 왼쪽으로 꺾인 채 옴짝달싹하지 않았다. 그대로 착륙하다간 기체가 화염에 휩싸일 게 분명한 상황이었다.

조종사는 기내 방송을 통해 대략의 상황을 알렸다. “기체에 이상이 생겨 로스앤젤레스로 회항하겠습니다.” 비행기는 무게를 줄이기 위해 바다 위를 선회하며 연료를 흩뿌리기 시작했다.

잠시 후 기내 모니터에 위성TV 채널의 ‘긴급뉴스’ 자막과 함께 앵커들의 다급한 목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로스앤젤레스발 뉴욕행 제트블루 소속 여객기가 랜딩기어 고장으로 위험에 빠졌습니다…. 로스앤젤레스 공항에 구조대가 비상 대기 중입니다.” 여기저기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몇몇 승객은 흐느끼기 시작했다.

“마치 꿈을 꾸는 듯 초현실적인 상황처럼 느껴졌습니다.” 음악가인 승객 자카리 마스툰 씨는 그 순간을 이렇게 회상했다. 메모지에 유서를 쓰는 승객들도 있었다. 한 승객은 플로리다에 사는 어머니에게 휴대전화로 문자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3시간 뒤 비행기는 로스앤젤레스 공항 활주로에 내려앉았다. 앞바퀴가 불꽃과 소음을 냈다. 불꽃은 곧 꺼졌다. 정작 승객들은 이 순간을 지켜보지 못했다. 착륙 직전 TV가 꺼졌기 때문.

“정말 무서웠어요. 차라리 TV가 없었으면 기내가 훨씬 평온했을 거예요.” 비행기에서 내린 뒤 한 승객은 분통을 터뜨렸다. 다행히 부상한 승객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57명은 곧 다른 비행기로 옮겨 타고 뉴욕으로 향했다. 미 연방항공청과 국가교통안전위원회는 블랙박스 분석을 통한 사고 원인 조사에 착수했다.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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