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이란 核 정면대결로 가나

  • 입력 2005년 6월 28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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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럼즈펠드 미국 국방장관은 26일 반미 강경파인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 당선자에 대해 “민주주의의 친구가 아니다”라고 비난한 뒤 ‘가짜 선거’로 당선된 인물이라고까지 몰아붙였다. 그동안 공을 들여온 미국의 중동 민주화 구상은 물론이고 핵을 비롯한 대량살상무기(WMD) 확산방지 노력에 ‘역풍’을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를 내비친 것이다. 특히 이번 이란 대선 결과로 이란과 북한의 핵문제가 ‘강력한 핵 연쇄반응’을 만들어 낼지 모른다는 관측까지 나오고 있다.》

▽이란 강경파 지도부의 움직임=아마디네자드 당선자는 26일 “우리는 에너지와 의료 및 농업 분야의 필요에 따라 핵 개발을 계속 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평화적인 목적을 앞세워 핵개발을 지속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이다.

그러면서도 이란 지도부는 현재 진행 중인 유럽연합(EU)과의 협상을 지속하겠다는 입장만큼은 되풀이해서 강조하고 있다. 당장은 미국과의 대결로 치닫지 않겠다는 뜻이다.

루이지애나주립대의 이란 전문가인 마크 개시오로스키 박사는 이날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대선 승리를 쟁취한 이란 강경파들은 핵 협상을 지속하겠지만 미국이 내세우는 핵문제 해결의 조건과는 동떨어진 것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의 대응=브루킹스연구소의 케네스 폴락 연구원은 “아마디네자드 후보의 승리는 이란이 강경노선을 택할 것으로 예상하고 강경한 대응을 유일한 선택이라고 생각해 온 조지 W 부시 미 행정부 관리들의 입장을 강화시킬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은 그동안 이란 핵문제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로 회부해 제재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이란이 핵 개발을 은폐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 핵 사찰단을 속이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EU 25개국을 대표해 핵 협상을 벌이고 있는 영국 독일 프랑스는 일단 이란과의 대화를 통한 해결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는 “EU는 이란의 핵문제를 풀기 위해 새로운 제안(new proposals)을 제시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로이터통신이 27일 보도했다.

▽이슈로 떠오른 이란 핵과 북한 핵=부시 미 대통령이 ‘악의 축’으로 지명했던 북한과 이란은 핵문제를 계기로 ‘핵의 축’으로 떠오를 가능성도 없지 않다. 당장 선진 8개국(G8) 정상들은 다음 달 6∼8일에 영국에서 열리는 회의에서 북한 핵의 완전 폐기 문제를 다룰 예정이라고 요미우리신문이 27일 전했다. G8는 이란 핵문제에 대해서도 우라늄 농축과 재처리 전면 중단을 촉구할 계획이다.

북핵 문제는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이 6자회담 복귀 의사를 내비친 뒤 한숨 돌리는 양상이나 이란 핵문제는 중동 정세에 미치는 파급효과로 인해 파장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한국 정부의 한 관계자는 “미국은 안정적인 원유공급이라는 사활적 이해관계가 걸린 이란 핵문제를 초기 단계부터 강경하게 대응하고 있다”며 “특히 이란이 핵 개발에 본격적으로 나설 경우 이스라엘이 나서서 이란과의 전면전을 강행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고 말했다.

김영식 기자 spear@donga.com

■ 유럽 빅3의 중재는

대미 강경파 이란 대통령의 탄생을 바라보는 유럽 국가들, 특히 ‘빅3’로 불리는 영국 프랑스 독일의 걱정은 미국 못지않게 크다. 2003년부터 이란과 미국을 상대로 이란 핵문제 해결을 위한 ‘중재자’ 역할을 해 온 빅3의 역할이 더욱 커질 수도, 아니면 아예 설 자리를 잃을 수도 있다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이란 외무부는 당장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 당선 확정 직후인 26일 유럽 3국과의 핵 협상에 계속 참여할 것이라면서도 “이번 대선 결과 이란은 도전을 감내할 능력이 더 생겼다”고 선언했다. 보다 강경한 입장에 서게 될 것임을 예고하는 말이다.

유럽 3국은 그동안 미국과 이란 사이를 오가며 합의점을 찾으려 노력했다. 줄곧 “이란에 보상은 없다”며 강경 입장을 고수해 온 미국을 설득해 3월 이란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할 수 있도록 물꼬를 트기도 했다.

영국은 이미 리비아 협상을 성공시킨 경험을 갖고 있다. 리비아가 2003년 말 핵 프로그램을 완전 포기한 데에는 그해 3월부터 진행된 리비아, 미국, 영국의 3자 협상, 특히 영국의 중재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당시 존 볼턴 미 국무부 차관이 리비아에 대해 비타협적 태도를 보이자 영국은 백악관에 항의해 그를 협상에서 배제시키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전문가들은 미국과 긴밀한 동맹관계를 맺고 있으면서 이란과도 말이 통하는 유럽 국가의 중재 역할이 북한 핵문제를 푸는 데에도 시사점이 많다고 분석한다. 중국이 중재역을 자임하고 있지만, 미국이 중국을 ‘선의의 중재자’로서 신뢰하지 않고 중국 역시 북한은 물론 미국을 설득할 만한 힘을 갖지 못한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는 것이다.

이철희 기자 klim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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