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러 밀월 관계 끝났나… 24일 정상회담 앞두고 긴장 고조

  • 입력 2005년 2월 20일 18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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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슬로바키아 브라티슬라바에서 열리는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정상회담을 앞두고 양국의 갈등과 긴장이 높아지고 있다.

러시아가 이란 원자력발전소에 핵연료를 팔겠다고 밝히자 미국은 선진 8개국(G8)에서 러시아를 제외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양국의 갈등은 리처드 홀브루크 전 유엔 주재 미국대사가 “2001년 9·11사태 이후 계속돼 온 백악관과 크렘린의 밀월관계는 끝났다”고 말할 정도로 심각하다. 러시아 언론들도 “이번 정상회담에는 수많은 난제가 기다리고 있다”고 전했다.

▽러시아, 이란에 핵연료 판매 강행=러시아 정부는 17일 이란의 부시르 원전에 대한 핵연료 판매를 강행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란의 핵무기 개발 가능성 때문에 원전 건설 자체에 반대하는 미국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다음 날인 18일 푸틴 대통령은 “이란은 핵무기를 개발할 의도가 없다”면서 이란 방문 계획까지 밝혔다. 러시아는 미국의 반발을 의식해 “이란이 쓰고 난 폐연료는 회수하겠다”고 밝혔다. 폐연료를 재처리해 플루토늄을 추출하지 못하게 막겠다는 것.

러시아는 8억 달러가 넘는 이권이 보장된 원전 사업을 포기할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란 핵문제는 현재 미국이 이라크, 북한 핵과 함께 최우선 외교현안으로 간주하고 있는 사안이다.

16일에는 러시아 국방부의 한 고위관리가 “시리아와 단거리 지대공 미사일 시스템인 스트렐리츠(SA-18) 판매 협상을 벌이고 있다”고 시인했다. 미국이 테러리스트를 지원한다며 사실상 적대국으로 간주하는 시리아와의 관계를 오히려 강화하는 조치다.

최근 이란과 시리아가 미국의 압박에 맞서 ‘공동전선’을 펴겠다고 선언한 뒤 러시아가 여기에 가세하는 형국이다.

▽민주화 앞세워 러시아 몰아붙이는 미국=러시아 관영 노보스티통신은 18일 미국 상원이 이날 러시아를 G8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결의안을 상정했다고 보도했다. 러시아가 핵연료를 이란에 팔겠다고 발표한 다음 날이다.

이 결의안은 공화당의 존 매케인 의원과 민주당의 조지프 리버먼 의원 등 거물 정치인들이 주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방 선진국 모임에 ‘전체주의 국가’인 러시아가 포함되는 것은 이상하다는 논리다.

미 상원은 앞서 ‘유코스 사태’ 등 러시아 민주화에 대한 청문회를 열기도 했다. 최대 민간기업인 유코스가 강제로 해체될 정도면 시장경제와 민주주의에 대한 크렘린의 의지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는 분위기가 미국 정치권에서 확산되고 있다.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이달 5일 터키 앙카라에서 열린 미-러 외무장관 회담에서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에게 “러시아는 언론 자유와 법치 신장에 대한 의지를 보이라”고 압박하기도 했다. 라이스 장관은 또 “서방과의 관계 강화를 원하면 민주화 노력부터 하라”고 촉구했다.

모스크바=김기현 특파원 kimki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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