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박원재]日 CEO들의 ‘경제 찬가’

  • 입력 2005년 1월 17일 18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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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과거와 결별하는 해다. ‘잃어버린 10년’을 지나오면서 낡은 체질은 모두 버렸다. 이제 희망을 가져도 좋다.”

일본 굴지의 철강업체인 신일본제철의 미무라 아키오(三村明夫) 사장이 밝힌 새해 포부에는 의욕이 넘친다. 지긋지긋한 장기불황의 터널을 빠져나왔다는 안도감과 함께 실적 개선에 따른 자신감이 묻어난다.

이달 초 일본 재계의 수뇌부가 한자리에 모인 신년 인사회 분위기도 매우 밝았다.

오릭스의 미야우치 요시히코(宮內義彦) 회장은 “올해는 십수 년간의 정체에서 벗어나는 해”라고 운을 떼었고 참석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마쓰시타전기의 모리시타 요이치(森下洋一) 회장은 “한 번 더 새로운 일본을 만들어 가겠다는 기개가 필요한 때”라고 가세했다.

부실채권 문제로 몇 년간 낯을 찌푸렸던 은행장들도 “부실이 웬만큼 정리됐으니 올해부터는 공격 경영으로 전환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새해 벽두의 덕담으로 치부하기엔 사용된 어휘가 희망적인 단어 일색이다. 일본의 최고경영자(CEO)들이 여간해서는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례적이다.

최근의 경기회복을 기업이 주도했다는 자부심 때문인지 정부를 향한 고언(苦言)도 눈에 띄게 늘었다.

“일본이라는 국가를 어떻게 경영할 것인지 그랜드 디자인이 필요하다” “막대한 재정적자 해소 대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의 구조개혁 노선에 대해선 “방향은 옳지만 속도가 너무 느리다”고 따끔하게 꼬집었다.

CEO들만 여유를 찾은 게 아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전선에 나선 청년 구직자들의 표정도 대체로 밝다. 앞날을 낙관한 기업들이 채용 규모를 늘린 덕택에 일자리 구하기가 한결 수월해졌기 때문이다.

81개 대기업을 상대로 한 인력채용 조사에서 대상 기업의 약 20%가 올해 봄에 입사하는 신입 사원 수를 작년보다 늘렸다고 답했다. 한 전자업체 관계자는 “작년까지는 마음에 드는 인재가 없으면 정원에 못 미쳐도 채용을 중단했는데 올해는 예정된 인원은 그대로 뽑는다”고 전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인원 감축을 중심으로 하는 구조조정은 거의 끝났으며 향후 사업 확장에 대비해 우수 인력을 확보하는 쪽으로 기업들의 인사정책이 바뀌고 있는 징후라고 풀이했다.

경기회복이 선순환 궤도에 진입하면서 지난해 도산한 기업은 전년보다 15% 줄어든 1만4000개로 최근 10년 사이에 가장 적었다.

도요타, 혼다, 닛산 등 일본의 자동차 3사는 미국 자동차시장의 30% 이상을 석권했고 캐논, 샤프 등 전자업체들은 앞 다퉈 대규모 투자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새해 국정운영 방향으로 ‘경제 올인’을 택한 것은 늦은 감이 있지만 올바른 선택이다. 기업이 작심하고 나서면 밑바닥 경제가 좋아지고 사회도 활기를 되찾는다는 사실을 일본이 보여주고 있다.

한국 재계의 내년 신년 인사회에선 누구를 탓하는 소리보다는 희망과 자신감에 찬 덕담만 들리기를 기대한다.

박원재 도쿄 특파원 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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