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영호/이라크 재건 무임승차는 없다

  • 입력 2003년 12월 15일 18시 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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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이 자신의 고향 마을인 티크리트 근처 농장에서 체포됨으로써 이라크 사태는 완전히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5월 1일 미국은 이라크전쟁의 종전을 선언했지만 후세인 추종자들에 의한 테러와 저항은 계속됐다. 그 결과 미군과 다국적군은 전쟁 기간보다 종전선언 이후 더 많은 희생을 당했다. 최근 이슬람 금식월인 라마단을 계기로 본격화된 무차별적 테러로 이라크 국내외에서 230명이 넘는 군인 외교관 민간인이 희생됐다. 그러나 후세인 체포로 미국은 그런 어려움을 극복하고 이라크 민주화와 경제적 재건을 가속화할 수 있는 유리한 발판을 마련했다.

▼‘후세인 이후’ 국제 협력 절실 ▼

후세인과 그 잔당들의 재집권을 우려해 온 이라크 국민도 미군정과 과도통치위원회에 적극 협조하게 될 것이다. 또한 저항세력이 구심점을 상실함으로써 앞으로 조직적인 저항이 어렵게 될 것이다. 이라크 국내 치안 상황이 빠르게 안정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미군과 다국적군에 대한 간헐적인 저항과 테러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그런 만큼 후세인 체포를 계기로 이라크 사태를 조기에 안정시키기 위한 국제사회의 적극적인 노력과 협력이 절실한 때다. 이라크 사태가 수습되지 않을 경우 이라크는 사분오열돼 제2의 발칸반도가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동안 이라크 테러의 직접적인 피해국들은 국내적으로 이라크 파병과 주둔에 대한 불리한 여론에 직면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라크전쟁에 반대했던 유럽 국가들도 이라크 재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이미 표명한 바 있다. 게다가 후세인 체포는 이라크전쟁의 사실상 종식을 의미하기 때문에 파병을 고려하고 있는 국가들로서는 이제 파병의 목적이 전쟁이 아니라 치안 유지와 재건이라는 것을 더욱 분명하게 보여주어 국내 여론을 유리하게 이끌 수 있게 됐다. 따라서 국제사회의 이라크 파병 결정은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 정부는 이라크 내 독자 지역을 담당할 수 있도록 3000명 규모의 전투병과 재건지원병 혼성부대를 파병하기로 했다. 파병이 실현되면 한국은 이라크 사태의 조기 안정에 기여함으로써 국가적 위상 제고에 크게 기여하게 될 것이다.

노무현 정부는 이라크 추가파병 문제가 제기된 뒤 4개월 동안이나 여론의 눈치를 보면서 파병부대의 성격과 규모에 대한 결정을 유보해 왔다. 해리 트루먼 전 미국 대통령은 외교정책 결정을 요리에 비유하면서 “부엌의 열기를 견딜 수 없는 사람은 요리하러 부엌에 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만큼 외교정책은 항상 지도자의 용기와 결단을 필요로 하는 영역이고 우유부단과 대중추수주의가 설 땅은 없다.

노 대통령은 국가안보 문제를 국내 정치에 이용하려는 유혹을 과감히 떨쳐야 한다. 이번 이라크 파병 결정 과정은 뚜렷한 국가전략적 비전을 갖고 국민적 에너지를 결집시켜 나갈 수 있는 대통령의 통합적 리더십이 어느 때보다 절실함을 잘 보여주고 있다.

국회 동의가 이뤄지면 정부는 내년 4월 총선을 의식하지 말고 파병 준비를 마치는 대로 총선 이전에라도 파병해야 한다. 우리 국민도 국제사회에서의 우리 위상으로 볼 때 이라크 문제에 무임승차할 수 없다는 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 특사파견 中東외교 적극 나서야 ▼

후세인의 체포로 이라크 내의 저항 강도가 상당히 약화될 것으로 예상되기는 하지만, 정부는 파병부대와 재건사업 참여 근로자의 안전을 위해 철저한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 또 한국에 대한 이라크 주변 국가들의 이미지 제고를 위해선 중동 특사를 임명해 순방외교를 펼치는 방법도 적극 고려해야 한다.

이번 이라크 파병을 계기로 21세기의 새로운 시장과 자원보유국으로 떠오르고 있는 중앙아시아 지역 진출을 위한 발판을 마련해야 한다. 에너지 안보와 경제의 측면에서 중동은 우리에게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지역이다. 현지 주민들의 문화적 특성을 충분히 고려해 이라크 파병이 반드시 성공할 수 있도록 정부는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김영호 성신여대 교수·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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