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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3년 5월 23일 19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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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내 미 군정(軍政) 당국이 유력한 과도정부 수반으로 점찍은 찰라비의 과거 행각이 월 스트리트 저널 22일자 보도에 상세히 드러났다. 기사는 찰라비의 해명을 곳곳에 주석처럼 달았지만 과거 수사기록과 전 은행 임원의 진술 등은 그의 도덕성에 심각한 의문을 던지고 있다.
이라크 사업가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미 MIT와 시카고대에서 공부하며 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교편을 잡은 그는 요르단 왕족의 권유로 1978년 암만에 페트라은행을 설립했다.
요르단 남부의 세계적인 고대 유적의 이름을 빌린 페트라은행은 당시로서는 선진 경영기법과 신용카드 발급 업무로 단번에 기반을 다졌다.
그러나 찰라비식 경영은 요르단 금융당국의 거래 규정을 교묘하게 피해가는 것이었다. ‘수신액의 70% 미만’으로 묶인 여신한도를 지키지 않았고, 초과여신을 숨기기 위해 다른 은행에서 꾼 콜자금을 장기수신으로 분류하기도 했다. 특히 찰라비는 베이루트와 스위스 제네바, 미 워싱턴에 세운 자(子)은행과 투자회사간에 규정을 벗어난 자금거래를 총지휘했다.
페트라 금융왕국이 위기를 맞은 것은 1988년 요르단이 금융 위기에 빠진 직후, 스위스 은행 당국이 페트라 자은행의 인가를 취소했고 제네바 투자회사도 청산절차를 밟도록 했다. 때마침 요르단은 은행권에 외화수신액의 35%를 중앙은행에 예치하라는 긴급명령을 발동했다.
그러나 스위스 차입 길이 막힌 페트라는 단 1달러도 예치할 수 없었다.
1989년 페트라은행 관리에 들어간 요르단 정부는 회계법인 아서 앤더슨과 4개월에 걸친 실사를 벌여 페트라가 자본잠식 상태임을 밝혀냈다.
그러나 찰라비는 이미 국외로 탈출한 상태. 요르단 정부는 횡령 등 48가지 혐의로 찰라비를 기소, 22년형을 선고했으나 예금자 보호를 위해 3억달러 이상을 쏟아 부어야 했다.
박래정기자 eco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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