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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2년 10월 29일 18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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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진압작전 후 “테러세력과의 타협은 없다”고 천명, 마치 9·11테러 이후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의 어법과 흡사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월스트리트저널은 28일 사설에서 이번 인질극을 ‘푸틴의 9·11’이라고 비꼬았다.
미 백악관은 이번 작전에 대해 “책임을 물어야 할 당사자는 테러리스트”라고 논평했으며 수많은 인명 피해가 발생한 데 대해서는 “인질극을 해결할 쉬운 방법은 없었다”고 러시아 정부를 두둔했다. 중국은 미묘한 상황을 감안, 아직까지 침묵을 지키고 있다.
이번 인질극과 강경 진압은 ‘테러리스트’에 대한 강대국들의 공조를 확인시켜 주고 있다. 미국은 지난해 10월 러시아와 중국의 지지를 바탕으로 알 카에다 소탕을 위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다. 리처드 아미티지 국무부 부장관은 8월26일 중국을 방문, 신장(新疆) 위구르 자치구 내 이슬람 분리세력(ETIM)을 ‘테러집단’으로 지정했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16일 러시아는 중국 내 티베트 분리운동의 정신적 지도자인 달라이라마의 러시아 방문을 불허했다. 미국 중국 러시아 3국이 테러리스트의 소탕을 명분으로 서로 주고받고 있는 것.
미국의 지지를 확보한 푸틴 대통령은 체첸독립주의자들에 대한 탄압을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언론들은 이 같은 공조가 더욱 불행한 결말을 예고하고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28일 이번 강경 진압이 “체첸 문제가 평화적으로 해결될 가능성을 아예 닫아버린 악수”라고, 타임은 4일자에서 “방식은 테러였지만 이들의 이유는 반(反)서구주의가 아니라 체첸의 독립”이라고 지적했다.
월스트리트저널도 이번 인질극은 △9·11테러와 달리 무차별 공격이 아니었고 △체첸은 대량살상무기를 가지고 있지 않으며 △오사마 빈 라덴은 미국을 먼저 공격했지만, 체첸의 저항은 역사적으로 러시아가 원인 제공을 한 책임도 있다며 반(反) 테러 논리의 부당성을 지적했다. 뉴욕타임스는 “폭력으로는 체첸의 독립을 얻을 수 없지만 마찬가지로 폭력으로는 체첸독립주의자와의 내전을 해결할 수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승진기자 sarafi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