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룽지 日TV 출연 악기연주 …역사문제 솔직하게 답변

  • 입력 2000년 10월 15일 18시 57분


일본을 방문중인 주룽지(朱鎔基)중국총리가 14일 밤 중국 지도자로서는 처음으로 일본 시민들과 직접 대화를 가졌다. TBS방송이 마련한 시민토론 프로그램에서 주총리는 1시간동안 역사 문제에 대해 솔직한 견해를 밝히는가 하면 유머를 곁들이는 등 ‘인간 주룽지’의 면모를 잘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그는 장쩌민(江澤民) 중국 국가주석이 97년 방일해 역사 문제를 집요하게 거론한 이후 중일 양국의 국민 감정이 손상됐다는 점을 의식해서인지 시종 중일 우호관계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번 토론에는 도쿄(東京) TBS스튜디오에 나온 시민 100여명 이외에도 오사카(大阪) 시민 20여명이 위성을 통해 참여했으며 일반 시민들도 인터넷 등으로 질문을 보냈다.

주총리는 토론 시작에 앞서 “일본에는 중국에 대해 불안과 위협을 느끼는 사람이 있는 것 같다. 나는 중일 양국간 신뢰를 쌓으러 왔다. 정부뿐만 아니라 국민과의 대화도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내 인상을 무섭다고 생각하지 말아 달라”고 말해 큰 호응을 얻었다.

토론은 “중국에서 한자녀 갖기 운동을 하면 어린이가 외롭지 않느냐”는 초등학생 질문으로 시작됐다. 이에 대해 주총리는 “나도 13세짜리 손자가 혼자 있는 게 안쓰럽지만 12억5000만명이 무제한으로 자녀를 낳으면 세계는 중국인으로 넘쳐날 것”이라고 대답했다.

대화의 쟁점은 역시 역사 문제. 한 시민이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 도쿄도 지사의 ‘3국인 발언(3국인들이 일본에서 문제를 일으킬 경우 자위대 출동을 요청하겠다는 요지)’에 대해 묻자 “중일관계는 좋은데 일부에서 중국인의 감정을 상하게 하고 있다. 국민 감정을 자극하는 것은 피해 줬으면 한다”고 우회적으로 답변했다.

또 “일본이 언제까지 사과를 계속해야 하느냐”는 질문에는 “나는 이번에 사죄를 요구하지 않았다. 그 때문에 중국에서 비난받고 있다. 그러나 일본은 공식문서에서 중국에 사죄한 적이 없다. 사죄 여부는 일본 문제지만 일본이 그 사실을 알아주길 바란다”고 답변했다.

난진(南京)대학살 등 역사 왜곡 문제에 대해서는 “말하고 싶지 않지만 대답하겠다. 난징대학살은 엄연한 사실이다. 역사를 감추거나 왜곡하는 것은 범죄다. 역사를 거울로 삼아 미래를 향해 나아갔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애창곡을 불러달라는 요청에 “애창곡은 중국국가인데 여러분이 모두 기립해야 하므로 부르지 않겠다”고 고사한 뒤 대신 중국 전통악기인 호궁을 즉석에서 연주해 큰 박수를 받았다.

<도쿄〓이영이특파원>yes20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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