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e코리아]한국 벤처투자 '썰물'…美선 '밀물'

  • 입력 2000년 10월 11일 18시 43분


‘인터넷. 잔치는 끝난 것일까.’

10일 밤 10시 서울벤처밸리. 불과 5개월전만 해도 불야성을 이루던 곳. 야망, 열정, 미래가 느껴졌던 벤처의 메카. 이제 밤늦도록 불켜진 사무실이 드물다.

도산한 회사, 월급을 못 준 회사, 핵심인력이 떠난 회사 등 온통 우울한 소식만 서울벤처밸리를 휩쓴다. 5개월전 벤처붐이 신기루 같기만 하다.

7일. 미국 실리콘밸리.

초대형 투자은행인 메릴린치는 이날 “400개 나스닥 상장 인터넷기업 중 75%가 단 한푼의 돈도 벌지 못한 채 쓰러지거나 다른 기업에 넘어갈 것”이라고 발표했다. 실리콘밸리에서는 메릴린치의 발표를 ‘뉴스’로 여기지 않았다. 흔히 듣는 소식이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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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밸리엔 여전히 활기가 넘쳐난다. 문을 닫는 벤처기업도 많지만 더 많은 기업들이 생겨나고 있다.

세계적인 컨설팅회사인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에 따르면 미국의 벤처기업에 대한 투자는 4월의 벤처기업 주가폭락에도 불구하고 계속 늘고 있다. 작년 4·4분기 147억달러이던 벤처투자가 올 1·4분기에는 171억달러, 2·4분기에는 196억달러로 늘었다. 올해 2·4분기 투자액은 작년 같은 기간의 투자액 76억달러에 비해 2배 이상 증가한 수치.

한가지 커다란 변화는 벤처기업에 대한 투자는 늘었지만 2·4분기부터 투자의 물줄기가 방향을 튼 점이다.

전자상거래 관련 소프트웨어, 통신분야, 인터넷기반 교육시스템 등 인터넷관련 서비스에 투자가 몰리고 있다. 인터넷상에서 유무형의 상품을 파는 순수 닷컴기업, 이른바 B2C벤처에는 투자가 거의 얼어붙었다.

미국의 e비즈니스 물결은 오히려 대기업에 거세게 몰아치고 있다. 거대한 몸집의 대기업들이 빠른 속도로 부품구매 제조 판매 서비스 분야에 인터넷을 활용하고 있다.

델컴퓨터는 재고비용을 ‘0’으로 낮추는 신화를 창조했다. 포드 GM 다임러크라이슬러는 오랜 경쟁관계를 끝내고 7500억달러에 이르는 인터넷 공동 부품구매시장인 ‘코비신트’를 지난달 열었다. 구매경비의 10%가 줄어들 전망.

GE캐피털은 콜센터를, 스위스항공은 경리부서를 인도로 옮겨 인건비를 크게 줄였다. 인터넷 덕분에 특정부서를 외국으로 옮겨도 한 빌딩에서 근무하는 것처럼 일할 수 있기 때문. IBM은 전세계의 연구실에서 돌아가면서 소프트웨어 작업을 실시, 사람은 바뀌지만 프로젝트는 24시간 365일 진행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벤처에 투자하거나 사내 인트라넷을 도입하는 정도를 e비즈니스로 여기는 한국 대기업이 과연 이들과 경쟁할 수 있을지 걱정될 정도다.

미국의 대기업과 벤처업계를 취재기자와 함께 둘러본 카이스트 테크노경영대학원 박성주 교수는 “디지털 경제 초입기에 겨우 들어선 우리가 e비즈니스 물결에 동참하지 못할 경우 순식간에 디지털경제의 낙오자가 될 것”이라며 “정부 기업 국민 모두가 ‘e코리아’를 향해 힘껏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리콘밸리·디트로이트·오스틴(미국)〓이병기기자>ey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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