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대선 막오른 TV토론 표정]고어, 부시 공약 맹공

  • 입력 2000년 10월 4일 18시 54분


《‘하이 눈(High Noon·정오)의 결투.’ 미국 CNN 방송은 3일 밤 열린 대통령선거 TV 토론회에 앞서 공화당 조지 W 부시 후보와 민주당 앨 고어 후보간의 치열한 ‘설전(舌戰)’을 서부 영화의 고전인 ‘하이 눈’에 비유했다. 두 후보가 수천만명의 시청자가 지켜보는 가운데 누구의 도움도 없이 ‘베지 않으면 베이는’ 한판 진검승부를 벌여야 하는 상황을 빗댄 것.》

이같은 관측대로 두 후보는 이날 토론회 사회를 맡은 PBS 방송 앵커 짐 레러가 던지는 질문을 놓고 줄곧 불꽃튀는 공방을 벌였다. 두 후보가 앵커의 소개로 입장할 때 부시 후보가 약간 굳은 모습인 반면 고어 후보는 청중에게 손으로 입맞춤을 보내며 여유를 보였다.

동전을 던져 먼저 포문을 연 후보는 ‘준비된’ 토론가 고어. 그는 “부시 후보의 감세 계획은 가장 부유한 계층 1%에게만 혜택이 돌아간다”고 몰아세운 뒤 중산층을 위한 감세 정책을 공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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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부시 후보는 “중산층에게만 감세 혜택을 줘서는 안된다”며 “엄청난 연방정부의 재정 흑자를 모든 납세자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반격했다.

고어 후보가 다시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 부시 후보의 감세 의료정책 등의 공약을 물고 늘어지자 부시 후보는 “엉터리 숫자로 사람들을 겁주는 것은 구태의연한 워싱턴의 정치 스타일”이라며 “고어 후보는 평소 인터넷을 만들었다는 허위 주장을 해 왔는데 실은 계산기를 만든 모양”이라고 맞받았다.

고어 후보는 이날 부시 후보가 발언하는 동안 ‘기가 찬다’는 표정으로 몇 차례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반면 상대적으로 토론 기술이 처진다는 평을 듣는 부시 후보는 고어 후보의 예리한 공격에 때로 초조한 표정을 짓기도 했으나 이따금씩 날카로운 펀치를 날리기도 했다.

부시 후보는 고어 후보가 할리우드와 변호사들로부터 많은 정치자금을 받은 것을 겨냥, “나는 할리우드와 법조계의 거물들에 맞서 왔다”며 차별성을 부각시켰다.

고어 후보는 부시의 인신공격성 발언에 “당신은 스캔들에 초점을 맞추기를 원하겠지만 나는 정책의 결과에 초점을 맞추겠다”며 피해 나갔다.

첫 토론회는 미 언론과 정치분석가들의 예상대로 고어 후보의 우세 속에 진행됐다. 정치평론가인 윌리엄 슈나이더는 “두 후보가 많은 준비를 했지만 토론 경험이 많은 고어 후보가 세부적인 정책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며 부시 후보를 앞서 갔다”고 평가했다.

토론회가 끝난 뒤 CNN방송이 플로리다주 탬파대에서 아직 지지후보가 없는 유권자들을 방청석에 출연시켜 시청 소감을 물어본 결과에서도 고어 후보가 ‘더 잘했다’는 반응이 많았다.

그러나 일부 유권자들은 “첫 토론회만 놓고 누구를 지지할 것인지를 결정할 수는 없다”며 “앞으로 남은 2번의 토론회를 마저 지켜보고 한 표를 던지겠다”는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일각에서는 워낙 말을 잘하는 고어 후보보다는 당초 TV 토론을 거부하려 했던 어눌한 부시 후보가 의외로 선전했다는 평가도 나왔다.

토론 직후 실시된 CBS 방송의 호감도 여론조사도 이를 뒷받침했다. 토론회를 보고 난 뒤 부시 후보의 인상이 좋게 바뀌었다는 응답이 35%로 나타나 고어 후보(32%)보다 근소한 차로 많았다.

첫 토론회는 고어 후보가 근소한 차로 판정승을 거뒀다는 중론이다. 하지만 두 후보가 그동안 엎치락뒤치락 박빙의 접전을 벌여온 점을 고려하면 고어 후보가 확실한 승기를 잡았다고 보기는 이르다. 따라서 2, 3차 토론회는 더욱 손에 땀을 쥐게 할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한기흥특파원>eligius@donga.com

▼[두 후보 공방내용]재정흑자 처리 최대쟁점▼

고어와 부시 후보가 가장 격론을 벌인 분야는 역시 세금과 의료보험. 두 후보는 전체 토론 시간의 40% 정도를 이 문제에 할애했다.

세금과 의료는 미 국민의 호주머니 사정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다 정부의 역할에 관한 두 후보간 의견 차도 두드러진 분야이기 때문.

이번 선거의 최대 쟁점으로 부상한 재정흑자 처리 문제를 놓고도 두 후보는 한치의 양보도 없이 불꽃 튀는 공방을 벌였다.

고어 후보는 10년 동안 1조300억달러의 세금을 감면하겠다는 부시의 공약이 “결국 1%의 부유층을 위한 감세 정책”이라며 “애써 이룬 재정 흑자를 낭비할 필요가 없다”고 비난했다.

부시 후보는 교육 의료 국방 분야에 재정 흑자를 투입하려는 고어의 정책은 “200건의 신규 사업과 2만명의 관료를 추가하는 효과를 가지게 된다”면서 “이는 결국 워싱턴을 더욱 강력하게 만들 뿐”이라고 응수했다.

중산층 의료보험에 해당하는 메디케어 개혁에 대해서는 부시 후보가 우세를 보였다.

부시 후보는 고어 부통령이 주도한 메디케어 개혁이 실패로 끝난 것을 상기시키면서 고어후보가 의료개혁을 두려워하는 “메디―스케어(Medi―Scare)” 상태라고 꼬집었다.

최근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는 정치 경제 문제를 놓고도 두 후보는 설전을 벌였다.

유가 급등과 관련해 부시 후보는 알래스카 유전을 개발, 에너지 의존도를 줄여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고어는 환경 파괴를 이유로 대체 에너지 개발에 힘을 쏟는 것이 낫다고 반박했다.

낙태약 RU―486의 시판에 대해 부시는 “낙태를 부추기는 위험한 발상”이라고 비난한 반면 고어는 “여성의 결정권 확대를 위한 중대한 진전”이라고 옹호했다. 이날 토론회에서 줄곧 부닥치던 두 후보는 유고 사태 해결을 위해 밀로셰비치가 물러나는 길밖에 없다는 데에는 모처럼 한 목소리를 냈다. 밀로셰비치의 축출을 위해 미국이 군사 개입을 할 것이냐는 질문에도 두 후보는 “시기상조” “북대서양조약기구를 통한 간접 압력이 더 효과적”이라고 답했다.

두 후보는 미국 경제가 위기에 빠질 경우의 대처 방안을 묻자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를 통한 강력한 개입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정미경기자>mi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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