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 화폐가치 하락…루피아 2년만에 최저치

  • 입력 2000년 7월 6일 19시 38분


동남아국가에 외환위기가 발생한지 3년이 지나면서 인도네시아의 루피아화 등 동남아 국가들의 통화 가치가 크게 떨어져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이 또 한 차례의 외환위기를 겪게 될지도 모른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6일 재정경제부와 국제금융센터등에 따르면 97년 동남아 금융위기의 진원지 중 한 곳인 인도네시아 루피아화의 통화가치가 최근 폭락해 2년 만에 최저치로 떨어졌다. 이는 우리나라에도 영향을 주어 원화의 가치가 덩달아 하락하고 있다는 것이다.

재경부의 한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이미 외환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어 별 우려가 없다”고 전제하면서도 “국제금융계에서 아직도 아시아 전체를 하나의 패키지로 생각하는 경향이 높아 문제”라고 지적했다. 우리의 상황과는 무관하게 동남아 발 외환위기가 그대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이 달 들어 루피아화가 폭락하자 원화를 매입하려는 세력도 줄어 덩달아 통화가치 하락으로 이어진 것은 아시아를 하나로 보는 국제 금융계의 조류가 전혀 시정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며 우려를 표명했다.

동남아 국가들이 연쇄적으로 외환 위기를 당한 지 꼭 3년이 지났다. 한국의 외환위기도 여기에 큰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 국제통화기금(IMF)의 진단이다.

실제로 3년 전에도 동남아 국가에서 7월에 외환위기사태가 터진 다음 3개월 시차로 우리도 당한 바 있다. 한국의 외환위기가 동남아국가들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는 게 IMF의 공식 진단이기도 하다. 우연의 일치일지는 몰라도 국내 상황은 외환위기 직전이었던 97년 여름과 너무도 흡사하다.

▽동남아와 한국은 닮은 꼴(?)〓97년 동남아 위기는 그 해 7월초 태국 바트화가 헤지펀드(투기성 국제단기자본)의 공격에 밀려 폭락하면서 촉발됐다.

이번에는 루피아화가 동남아 금융시장을 교란하는 주범. 인도네시아의 실물경제가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 가운데 대통령과 의회의 대립 등 정치적 갈등이 부각되자 외국 투자자들은 서둘러 루피아화를 팔아치우고 달러를 사들였다.

달러화에 대한 루피아화의 환율은 올해 초 7100루피아에서 5일 한때 9425루피아까지 치솟아(루피아 가치 하락) 2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올해 초 달러당 36바트대에서 안정됐던 태국 바트화도 약세를 면치 못하며 달러당 40바트에 육박한 상태.

루피아화의 ‘전염 효과’가 위력을 발휘하면서 원화가치는 이달 초 달러당 1110원대 초반에서 6일 장중 한때 1119원 선으로 하락했다.

이는 싱가포르 홍콩의 역외선물환시장(NDF)에서 루피아화 바트화 NT달러(대만) 원화(한국) 등 동아시아 통화를 같은 반열에서 거래하는 관행 때문. 한 외국계 은행의 외환딜러는 “비슷한 시기에 외환위기를 겪었다는 공통점 때문에 역외시장에서는 동남아 통화를 팔 때 원화도 매각대상에 포함시킨다”면서 은행파업도 원화가치를 떨어뜨린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97년 교훈 새겨야〓공교롭게도 최근 국내 상황은 97년과 흡사한 대목이 적지 않다는 분석. 대표적인 예로 금융개혁 방안을 놓고 정부와 이해 당사자 간에 소모적인 마찰을 빚는다는 점이 꼽힌다. 총외채 중 만기 1년 미만의 단기외채 비중이 98년 3월 이후 처음 30%대로 높아져 계속 증가추세라는 점도 정부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운 대목이다.

김용민 재경부 국제금융심의관은 “200억달러 안팎에 불과했던 외환보유고가 900억달러로 확충됐고 국내 기업과 금융기관의 체질도 강화된 만큼 단순비교는 무리”라며 “무엇보다 정부가 긴장을 늦추지 않는 점이 그 때와 다르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동남아 통화불안의 부정적 측면을 과대 포장해서는 안되지만 위기가 재발되지 않도록 만반의 대비책을 세우는 노력은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환은경제연구소 신금덕동향분석팀장은 “무역수지가 흑자기조를 유지하고 외국인 주식투자자금이 꾸준히 들어오는데도 원화가치가 떨어진 것은 동남아 변수에 국내금융 불안이 겹쳤기 때문”이라며 “기업 및 금융개혁의 강도 높은 추진만이 유일한 해법”이라고 말했다.

<박원재기자>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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