印尼 메가와티 「대통령급 부통령」

  • 입력 1999년 10월 22일 00시 09분


그동안 형식적 존재에 불과했던 인도네시아 부통령이 이번에는 주목을 받게 됐다. 특히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 부통령은 전례없이 막강한 ‘대통령급 부통령’이 될 전망이다. 우선 압두르라만 와히드 대통령의 건강이 나쁘고 정치적 기반도 취약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메가와티가 이끄는 민주투쟁당은 6월 총선에서 득표율 34%, 국회의석비율 30.6%로 원내 제1당이 됐고 개혁을 원하는 시민 학생 세력의 지지를 받고 있다. 와히드의 약점과 메가와티의 강점이 메가와티를 더욱 강력하게 만들 것으로 보인다.

와히드는 문서에 서명하기도 어려울 만큼 시력이 약하고 거동도 자유롭지 못하다. 인도네시아 정치분석가 살림 사이드는 “부통령이 대통령의 신체적 단점을 보완해야 할 것”이라며 “부통령의 역할이 대통령을 능가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만약 와히드가 5년 임기를 채우지 못한다면 메가와티가 대통령직을 승계해 잔여임기를 맡게 된다.

와히드는 이슬람계 정당들의 지지를 받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의석비율 10.1%의 제4당 당수다. 그런 취약성 때문에 와히드는 당파를 초월해 내각을 구성하겠다고 밝혔다. 내각이 그렇게 구성되면 다양한 각료들을 조정하는 임무가 메가와티에게 맡겨질 공산이 크다.

게다가 와히드는 33년간 집권해온 기득권 세력에도, 개혁을 원하는 시민 학생세력에도 확고한 기반을 갖고 있지 않다. 그런 공백 가운데 특히 시민 학생들의 개혁요구를 수용하고 그들을 설득해 정국안정을 기해야 하는 임무를 메가와티가 맡을 것으로 보인다.

벌써부터 메가와티는 자신의 대통령낙선에 실망해 시위를 벌인 지지자들에게 자제를 호소하며 설득했다. 그런 의미에서 메가와티의 부통령 취임은 정국안정에 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와히드가 이끄는 국민각성당이 부통령후보로 메가와티를 지명하고 선거에서 지원한 것도 주로 그런 기대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와히드―메가와티 팀은 만만찮은 과제를 안고 있다. 우선 두 사람 모두 국정수행경험이 없다. 이런 약점은 당면한 경제위기 극복에 어려움으로 작용할 소지도 있다.

개혁의 속도와 강도를 둘러싼 와히드와 메가와티의 노선차이가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다. 와히드는 온건보수 성향이지만 메가와티는 대담한 개혁을 주장해왔다.

〈강수진기자〉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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