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우경화로 가다]국기-국가 법제화 '강한 일본' 큰획

  • 입력 1999년 8월 9일 19시 44분


《일본의 보수우경화 행보가 빨라졌다. 5월에 자위대의 행동반경을 넓힌 신(新)미일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관련법을 확정하더니 9일에는 국기 국가 법제화를 마쳤다. 45년 패전 이후 거의 금기시돼온 논의와 입법이 봇물처럼 이뤄지고 있다. 일본사회의 빗장이 단숨에 풀린 것으로도 비친다. 일본의 우경화는 어디까지 갈 것인가. 3회 시리즈로 긴급점검한다.》

국기 국가 법안이 9일 일본 참의원을 통과해 법률로 확정된 것은 일본 사회의 보수우경화를 상징한다.

히노마루(일장기)는 1854년 도쿠가와(德川)막부가 만들어 배에 단 것을 1870년 메이지(明治)정부가 그대로 이어 받은 것이다. 기미가요는 일본의 고문헌 ‘고금화가집(古今和歌集)’에서 천황의 치세를 찬양하는 가사를 찾아내 곡을 붙인 것으로 1893년 문부성이 초등학교에 보급하면서 정착됐다. 그러나 일본이 이것들을 국기 국가로 지정한 적은 없었다.

그러던 것이 올 2월에 발생한 한 고교 교장의 자살을 계기로 국기 국가 법제화가 속전속결로 추진됐다. 1945년 패전 이후 대내외적으로 조심스러운 행보를 계속해온 일본이 단숨에 국기 국가 법제화까지 질주한 것이다. 이것은 일본을 ‘보통국가’, 나아가 ‘강한 국가’로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큰 획을 긋는 사건임에 틀림없다.

태평양 전범 1호인 도조 히데키(東條英機)전 총리를 미화한 영화 ‘프라이드’가 히트하고 올 도쿄(東京)도지사 선거에서 대표적 보수논객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가 당선된 것도 이같은 사회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최근 일본의 정부 여당이 야스쿠니(靖國)신사를 참배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겠다고 나선 것이나 미국과의 전역미사일방위체제(TMD)연구, 정찰위성발사계획 등에 적극적인 것도 ‘강한 일본’을 바라는 국민의 욕구에 바탕을 두고 있다.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내각은 이것을 아주 쉽게, 그리고 아주 빨리 처리하고 있다. 지난해 7월 출범 때만 해도 3개월밖에 가지 못할 것이라던 오부치내각이 의외로 장수할 것으로 점쳐지는 데는 그런 배경도 작용하는 것으로 비친다.

일본이 최근 1년 사이에 이처럼 급격히 바뀌게 된 데는 역설적(逆說的)이게도 북한의 ‘도움’이 컸다. 북한이 위험한 존재로 부각될수록 일본이 강한 나라를 지향하는 데 대한 국내외 반발도 작아졌다. 자민 자유 공명당의 보수대연합도 이런 분위기의 부산물이다.

일본의 보수우경화를 견제해온 동북아 국가들도 경제가 중시되는 새로운 국제질서 앞에서 기존의 대일(對日)자세를 점차 바꿔가고 있다. 한국은 지난해 10월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방일을 계기로 ‘과거사 문제’를 매듭지었다. 지난주 한국 해군과 일본 해상자위대의 사상 첫 합동훈련도 한국에서 큰 거부감을 받지 않은 채 이루어졌다.

미국은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견제하면서도 아시아 방위의 일정부분을 일본에 분담시키려 하고 있다. 신(新)미일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도 미국의 그런 전략에 따른 것이다.

일본의 보수세력들은 이같은 기류를 업고 일본이 무력공격을 받을 때를 상정한 ‘유사법제’정비와 전쟁포기를 규정한 ‘평화헌법’개정 등 숙원 해결을 서두를 것으로 보인다.

〈도쿄〓심규선특파원〉ksshim@donga.com

[국기-국가 법제화 일지]

△1870년〓메이지정부, 포고령으로 ‘히노마루’양식 규정

△1893년〓문부성, 초등학교 축제노래로 ‘기미가요’ 등 8곡 제정

△1931년〓‘대일본제국 국기법안’ 중의원통과, 귀족원은 심의보류

△1958년〓문부성, 히노마루 게양과 기미가요 제창 권고하는 ‘학습지도요령’ 고시

△1994년〓무라야마 총리(사회당),히노마루기미가요인정

△1995년〓교원노조, 히노마루 기미가요 반대투쟁 보류

△1999년 2월28일〓히로시마 세라 고교장, 히노마루 기미가요 문제로 자살

△〃 3월2일〓오부치 총리(자민당), 국기 국가 법제화 검토 지시

△〃 6월11일〓각의, 국기국가법안 제출

△〃 7월22일〓중의원, 법안 가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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