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투자가 적대적 M&A훨씬 쉬워졌다

  • 입력 1999년 5월 10일 19시 32분


한국경제 ‘위기의 끝’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외국기업들의 적대적 인수합병(M&A)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해부터 거국적으로 외자유치 붐이 일면서 적대적 M&A를 방어할 만한 수단이 매우 취약해진 탓이다. 더욱이 최근 대기업들이 자금상황 호전으로 외국기업에 대해 ‘우호적’ 지분매각 등을 꺼리는 분위기가 확산되자 외국투자가들이 적대적 M&A를 시도할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전문가들은 적대적 M&A 자체가 우리 경제에 반드시 부정적인 것은 아니지만 현행 상법이 경영권 탈취에 제동을 걸 수 있는 방어수단을 크게 제약하고 있어 자칫 ‘역차별’에 따른 국내기업들의 불이익이 우려된다고 지적한다.

▽한국은 적대적 M&A에 안성맞춤〓프론티어 M&A의 진정(秦政)부사장은 최근 “우리 경제가 인근 중국 일본에 비해 개방적이고 우호적인 시장구조를 가진데다 재벌간 빅딜로 시장독점이 심해져 외국 거대 자본의 진출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고 밝혔다. 회복국면을 맞고 있는 우리 경제가 미 달러화와 유럽 유로화의 새로운 수요처로 떠오르고 있어 국내기업들의 지분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는 것.

지난해 외국인 직접투자는 사상 최대규모인 88억5천만달러(신고액 기준). 유동성 확보에 급한 국내 기업들이 발벗고 뛴 ‘우호적’ 인수합병 사례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한이봉 태평양법무법인 변호사는 “적대적 M&A를 불가능하게 했던 의무공개매수제도와 30% 이상 주식 취득시 필요한 이사회 동의규정이 폐지됐다”며 “적대적 M&A를 부추길 만한 전제들이 무르익었다”고 진단한다.

▽묶여있는 방어수단〓미국 등 M&A시장이 성숙한 나라에서 즐겨 사용되는 경영권 방어수단은 지배구조에 변동이 생길 경우 △기존 주주에게 싼값에 전환사채(CB) 등을 대량 구입할 수 있는 권리를 줘 물타기(독약처방)를 하는 방법 △임원들에게 거액의 퇴직보상금을 줘 M&A 세력에 부담을 주는 방법(황금낙하산) 등이 있다.

그러나 이들 중 상당수가 우리 상법상 금지돼 있거나 방어수단으로서 무용한 상황이다.

M&A 전문가들은 특히 최근 정부가 기업마다 우호지분으로 평가하고 있는 우리사주의 의무 보유기간을 7년에서 4년으로 대폭 단축한 것도 기존 주주들의 경영권 방어에 부담을 줄 수 있다고 지적한다.

우리 기업들이 주로 사용하는 경영권 방어수단은 ‘자기주식 취득’. 그러나 ‘배당이득 실현’이라는 전제가 붙어 있어 일부 상장사만이 가능한 선택인데다 주식취득 자금을 마련하는 것도 만만치 않다.

▽외국인 보유지분은 증가세〓이달 10일 현재 상장기업 중 외국인 보유지분이 50%를 넘는 곳은 모두 11개사. 주택은행 63%를 비롯해 삼성전자 삼성전관 메디슨 삼성화재 등 알짜배기 기업들이 모두 50% 안팎의 외국인 지분율을 보이고 있다. 외국인들이 세를 모으면 경영권이 위태로울 수 있는 상황이다.

47%의 지분을 외국인 투자가가 가지고 있는 삼성전관의 고위임원은 “외국인 투자가들과 경영권에 관련된 이면계약을 맺고 있진 않지만 그들이 (골치 아픈) 한국기업을 직접 경영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말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소수주주 이익이 갈수록 강조되고 있어 외국인 투자가들의 요구수준은 점차 경영권에 위협을 주는 수준으로 상향될 것이라며 정부차원에서도 보완책을 마련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하고 있다.

〈박래정기자〉eco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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