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러출범 中]국제금융시장 달러-유러 양극체제로

  • 입력 1998년 12월 17일 19시 21분


유러의 출범은 11개 참여국의 통화혁명일 뿐만 아니라 세계 금융시장의 판도를 다시 짜는 역사적 사건이기도 하다.

2차 세계대전 후 지속돼온 미국 달러화 중심의 일극체제가 달러와 유러가 분점하는 이극체제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이는 기축통화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세계를 지배하는 경제권력의 배분과도 직결돼 있다. 이 때문에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자리잡고 있는 벨기에의 브뤼셀에서는 ‘로마제국의 부활’ 분위기마저 감지되고 있다.

지금까지 유럽 각국의 통화가 국제금융계에서 누리는 지위는 보잘것 없었다. 세계 각국의 외환보유고에서 유럽통화가 차지하는 비중은 20% 남짓. 대신 70%가 달러화였다.

내년부터는 상황이 달라진다. 외환보유고 세계 2, 3위인 중국과 대만은 위험 분산을 위해 외환보유고의 일부를 유러로 대체하겠다고 밝혔다.

EU집행위 경제재정총국의 패트릭 차일드 대변인은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몇몇 정부가 유러를 기축통화로 사용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며 “유러가 조만간 달러에 비견할 만한 기축통화로 자리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축통화가 된다는 것은 ‘화폐발행차익(세뇨리지)을 차지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화폐발행 차익은 돈의 명목가치와 발행비용의 차이. 지금까지는 미국이 독식해왔지만 앞으로는 유럽과 나눠야 한다.

달러―유러 양극체제로의 재편과 함께 일본 엔블록의 중요성은 상대적으로 감소될 것이라고 문우식(文宇植)서울대교수는 전망했다.

문제는 유러가 어느 정도까지 달러를 대체하느냐는 것. 이는 유러의 안정성 및 유동성과 직결된다.

2차대전 후 달러가 영국 파운드화를 대체한 것은 영국의 높은 인플레, 파운드 가치의 등락, 세계무역에서 차지하는 영국의 비중 감소 등이 원인이었다.

유러가 기축통화로 정착하려면 화폐가치 안정, 낮은 인플레 등 전제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사이먼 렌루이스 미국 국제경제연구원(IIE) 연구원은 실물경제관점에서 2000년 유러의 균형환율이 유러당 1.15∼1.40달러라고 전망한다. 현재의 환율이 1.1달러인 만큼 앞으로 유러의 가치가 올라간다는 뜻.

유러가 기축통화로 자리잡기까지는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라는 견해도 많다. 한국은행 이강남(李康男)부총재보는 “최근 유럽은 좌파정부 일색으로 재정확대와 금리인하를 통해 경기부양을 하고 있으며 유럽중앙은행(ECB)의 독립성도 아직 입증되지 않았다”며 “이는 유러의 가치안정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허승호기자〉tige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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