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진단 일본경제①]실업자 3백만명 육박

입력 1998-11-08 19:23수정 2009-09-24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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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경제를 지난해 마이너스성장으로 몰아넣은 불황이 좀처럼 걷힐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일본정부가 잇따라 경기부양책을 내놓았지만 효험은 없다. 일본경제가 회복되지 않으면 한국은 물론 세계경제 전체에 큰 부담이다. 국제사회가 일본경제에 각별한 관심을 가진 것도 이 때문이다. ‘2차대전후 최악’으로 불리는 일본경제침체의 실태와 향후 전망, 국제사회와의 관계 등을 세 차례에 걸쳐 점검한다.》

일본인들은 요즘 경제상황을 묘사할 때마다 동원되는 ‘사상 처음’ 또는 ‘사상 최악’이라는 용어에 놀라면서도 한편으론 만성화돼가고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접하는 것이 이 표현이기 때문이다.

3년전 일본에서는 실업률이 3%가 됐다고 온통 난리였다.

그러나 올들어 실업률은 4.3%로 치솟았다.

실업자도 3백만명에 육박해 작년말보다 60만명이 늘었다.

올봄 대학졸업자의 취업률은 전후(戰後)최저인 65%로 떨어졌다.

실직과 도산 등으로 빚을 갚을 수 없어 한달 평균 8천명이 법원에 개인파산을 신청하고 있다.

일본인들은 97회계연도(97년4월∼98년3월) 경제성장률이 2차대전후 최악인 -0.7%로 떨어졌다는 발표에 경악했다. 그러나 얼마전 경제기획청은 98회계연도 성장률을 이보다 더 낮은 -1.9%로 예상했다. 2년 연속 마이너스성장은 처음 있는 일.

10월 일본의 국내 승용차판매대수는 전년동기에 비해 19개월연속 감소했다.

이같은 경제상황은 ‘악성 복합불황’이라는 신조어를 낳았다.

10월26일 도쿄(東京)에서는 한 공공직업안정소 주최로 ‘중장년층 취업설명회’가 열렸다.

설명회에 참가한 59개 기업은 건물관리 건설 음식업 등 중소기업이라기보다는 영세기업이라고 불릴 만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몰려든 취업희망자는 채용예정인원의 4배를 넘는 1천2백여명.

대기업체에 근무하다 올여름 퇴직한 40대 후반의 기무라 데쓰야(木村哲也)는 “아이들 학비와 주택융자금 상환 등 돈 들어갈 곳은 많은데 직장에서 밀려나니 눈앞이 아득했다. 처음에는 ‘아무 곳이나 갈 수야 없지’라는 생각이었지만 몇달 쉬다보니 찬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숨을 쉬었다.

백화점과 고급 유흥업소가 밀집한 도쿄 중심가.‘긴자(銀座)에 어둠이 내리면 택시잡기가 쉽지 않다’는 말은 옛날 얘기다. 빈 택시가 줄지어 서있다.

얼마전까지 엔화급락세를 초래해 국제금융시장의 불안요인으로 작용했던 금융산업의 취약성도 가시지 않았다.

최근 금융회생관련법안의 국회통과와 장기신용은행의 국유화조치로 일단 최악의 국면은 넘겼지만 금융산업 경쟁력이 단기간에 높아질 가능성은 없다.

세수가 줄면서 중앙정부는 물론 도쿄 등 주요 지방자치단체의 재정도 파탄위기다.

영국의 신용평가기관인 피치IBCA가 일본의 외화표시 장기국채 신용등급을 인하한 데 이어 미국 무디스사도 일본 국채의 신용등급을 낮출 태세다.

이같은 불황은 어디서 왔는가.

표면적으로는 소비세율 인상과 의료보험료 본인부담 증가 등 시기에 맞지 않는 무리한 정책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 부실한 금융산업 등이 원인이다.

그러나 사카이야 다이치(堺屋太一)경제기획청장관이 강조한 것처럼 “일본의 성공을 가져온 ‘관료주도형 업계협조체제’가 더이상 시대에 맞지 않기 때문”이라는 구조적 시각이 점점 힘을 얻고 있다.

대량생산형 제조업 시대에 세계 제일의 경쟁력을 자랑하던 일본식 시스템이 신속한 결단과 창의력이 요구되는 정보화시대를 맞아 한계를 드러냈으며 변화에 적응하는 것조차 지연되고 있다는 사실이 일본이 직면한 고민의 핵심이다.

〈도쿄〓권순활특파원〉shk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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