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러 외교관사건 점검]외통부-안기부협력 재점검 필요

  • 입력 1998년 7월 30일 19시 3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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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러시아간 ‘외교관 맞추방사건’의 파장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필리핀 마닐라에서 29일 열린 제2차 한―러 외무장관 회담에서 사건을 ‘공식종결’키로 했음에도 한국정부가 맞추방한 주한 러시아대사관의 올레그 아브람킨참사관을 재입국시키기로 ‘이면합의’를 했다는 설(說)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

이 이면합의설은 러시아와의 사전협의에서 선을 분명히 긋지 못한 한국정부의 실책도 있지만 그보다는 예브게니 프리마코프 러시아외무장관의 ‘언론플레이’에 가깝다는 것이 당국자들의 설명이다.

회담 말미에 프리마코프장관이 이삿짐싸기 등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아브람킨참사관이 잠시 서울에 재입국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집요하게 부탁, 박정수(朴定洙)외교통상부장관이 “정 그렇다면 정보기관간 협의에 넘겨 검토케 해보자”고 어물쩍 넘겼는데 프리마코프장관은 이를 “한국이 재입국을 허용했다”는 식으로 흘렸다는 것이다.

정부의 한 고위당국자는 “정보기관에서 이미 재입국불가 방침을 정해놓고 있어 이면합의는 있을 수 없다”며 “프리마코프장관이 박장관의 ‘면피성 대답’을 교묘하게 이용했다”고 전했다.

여하튼 한국정부는 이번 외교관 맞추방사건 수습과정에서 정부부처간에는 ‘부실공조’를, 대(對)러시아 외교전략에서는 ‘부실외교’를 여실히 보여줬다.

마닐라에서 제1차 한―러 외무장관 회담이 열리기 직전 러시아 정보기관은 프리마코프장관에게 “외교관 맞추방사건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며 강경대응을 주문한데 반해 李종찬 안기부장은 박장관에게 “모든 게 다 끝났다”라고 통보, 결과적으로 회담 결렬로까지 치달은 안이한 대응분위기를 만들었다는 후문이다.

외교통상부 역시 이 사건이 한―러 정보기관간 마찰을 넘어 국가간 외교현안이 됐는데도 협상을 주로 안기부에만 맡겨 놓고 있다가 막판에 허둥댔다는 비난을 면키 어렵다.

또 청와대 외교통상부 안기부가 합심, 체계적인 대응체제를 구축하기보다는 ‘딴 목소리’를 내는 바람에 외교전의 ‘누수현상’을 초래한 것도 이번 사건이 남긴 교훈이다.

〈김창혁기자〉c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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