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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1998년 4월 3일 07시 2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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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트판사는 여러가지 정황으로 미루어 클린턴에게 불리한 판결을 내릴 것으로 예상되었다.
우선 그가 90년 공화당출신인 조지 부시 당시 대통령에 의해 지명된 공화당성향의 판사라는 점이 그랬다. 또 그가 갖가지 인연으로 클린턴대통령을 속속들이 잘 알고 있다는 점도 클린턴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예상됐다.
라이트와 클린턴의 인연은 사제지간으로 출발했다. 74년 아칸소대 법과대학원에 재학할 때 교수였던 클린턴의 해사법강의를 들었던 것. 당시 하원의원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정신이 없었던 클린턴교수는 학생들의 시험답안지를 모두 잃어버리고 말았다. 클린턴은 학생들 모두에게 B+를 주겠다는 해결책을 제시했으나 오직 수잔만이 시험을 다시 보는 한이 있더라도 B+는 받을수 없다고 버텼다. 수잔은 당시 클린턴을 도와주러 아칸소주에 내려와 있던 힐러리까지 만난 뒤 A를 받아 전과목 A를 유지했다.
수잔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클린턴의 상대였던 공화당 현직 하원의원 선거캠프에서 일해 클린턴의 낙선을 도왔다.
판사가 된 수잔은 최근에는 화이트워터 부동산개발 사기 사건의 유력한 증인인 수잔 맥두걸을 클린턴에 관한 증언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17개월째 감옥에 가둬놓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악연에도 불구하고 라이트판사는 결정적일 때 클린턴을 구제했다. 비로소 그가 사감(私感)에 흔들리는 판사가 아니라는 게 입증됐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워싱턴〓홍은택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