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의 메콩이동통신(MTM) 영업과장 콩 찬(44). MTM은 한국통신의 현지법인이다. 그는 지난 5일 오후 3시 프놈펜 상가트 프사르 트메이거리에 있는 회사 사무실에서 갑자기 들리기 시작한 총과 대포 소리를 듣고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다.
프놈펜 시내 곳곳에서 대치해오던 훈 센과 라나리드 두 총리측 병사들이 급기야 전투를 시작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급히 집으로 오토바이를 몰았다. 지난 70년대말 크메르루주 치하에서 겪었던 대학살(킬링 필드)이 뇌리를 스쳤다. 그는 다행히 학살은 면하고 폴포트 정권에 의해 앙코르 앙에서 강제노동을 했다. 폴포트 집권 4년여 동안 앙코르앙 주민 1천명중 6백명이 굶주림이나 질병, 학살 등으로 죽어갔다. 집에 같이 살고 있던 여동생의 남편도 그때 굶어 죽었다. 정치집단간의 권력투쟁으로 또 얼마나 많은 국민이 피를 흘리게 될까 생각하니 몸서리가 쳐졌다.
오랜 갈등으로 국민도 두 총리세력으로 갈라졌다. 그러나 캄보디아 사람들은 보복이 두려워 자신의 입장을 겉으로 드러내지 못한다. 누가 누구 편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10여분만에 집에 도착한 그는 부인과 아들, 여동생 등 8명의 가족을 뒷마당에 파놓은 방공호로 대피시켰다. 시가전이 발생할 것에 대비해 지난 93년부터 파놓은 것이다.
가족을 피신시킨 그는 곧 회사로 돌아와야 했다. 4명의 무장한 사설 경호원과 함께 시외곽에 있는 1백10m 높이의 중계탑을 지키라는 지시를 받았기 때문이다. 가건물 2층에서 간단한 천막을 치고 사흘간을 꼬박 밤낮으로 중계탑을 지켰다.
지난해까지도 유네스코 등에서 시간제 근무로 통역일을 해 근근히 생계를 꾸려왔던 그에게 올해 1월 입사한 MTM은 생애 처음 가진 안정된 직장이자 가족의 생계와 희망이 걸려 있었다. 내전으로 자신의 삶의 터전이 풍비박산되지 않을까, 피비린내나는 일이 다시 벌어지지 않을까 하는 불길한 예감이 들기도 했지만 애써 지워 버린다고 말했다.
7일밤 프놈펜 시내의 전투가 일단락된 후 집으로 돌아왔다. 공항로를 따라 오는 길에는 약탈당한 주유소와 부서진 아크릴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시내 곳곳이 내전의 상처로 멍들어 있었다. 그는 프놈펜 시내 전투는 잠시 멎었지만 지방도시에서 계속되고 있는 무력대치가 불안하기만 하다. 10여년전의 악몽이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며 두려워 했다.
<프놈펜=김호성기자>